1. 들어가는 말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이 땅에 생명을 가지고 사는 한 세상을 벗어나 살 수 없다. 우리도 세상 속에 살고 세상과 함께 사고 세상을 어느 정도 즐기고 산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 가운데엔 과연 우리가 세상을 어느 정도까지 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리잡고 있다. 매일 TV를 시청하고 드라마를 즐기고 음악을 감상하고 인기 있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이 모든 것들이 세상 안에 있고 세상의 것들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돈을 필요로 한다. 세상 자본은 우리가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돈을 얼마나 가져야 하고 어떻게 벌어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 등에 대해 궁금해한다. 다시 말해, 이 땅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언제 어떤 때에 세상을 사랑하거나 미워해야 하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이를 알기 위해선 세상의 성경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성경에서 채택된 ‘세상’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테벨’(תבל)이다. 이를 70인 역(LXX)에서 두 가지로 번역했는데, 하나는 ‘코스모스’(κοσμος)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온’(αιων)이다. 먼저 구약에서 ‘테벨’은 하나님의 창조의 산물들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세상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무대라는 의미다. 그런데 신약에서 ‘세상’은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신학적, 윤리적 범주의 하나로 사용된다. ‘코스모스’와 ‘아이온’은 동의어이긴 하지만 때로 ‘코스모스’는 피조 세계와 지구 혹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아이온’은 이 세상 역사 속에서의 당시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의미의 사용을 놓고 본다면 명확한 구분이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은 공간적인 개념인 동시에 시간적으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어떤 세대’ 자체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 상에서 세상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첫째, ‘세상’은 단순히 이 땅, 곧 지구를 뜻한다. 특히 이때의 ‘세상’은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과 연관이 깊다. 즉, 그리스도는 이 세상 밖으로부터 오신 분으로 묘사된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나신 분이 아니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9~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요 9:39)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6)

둘째, 복음의 대상으로서의 ‘세상’이다.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과 관련해서 바울은 ‘온 세상’이 복음전파의 대상임을 선포하고 있다. 물론 지리학적으로 바울에게 있어서 세상은 지중해를 포함한 로마제국의 지역과 세상 끝의 개념 안이라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지만 복음을 세상의 전 지역에 전파한다는 사도의 사명과 세상이 조화를 이룬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 1:8)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로부터 너희 중에서와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골 1:6)

셋째, 세상은 사단(유혹자)이 지배하는 영역을 의미한다. 사도 요한은 사단은 ‘이 세상 임금’(요 12:31, 14:30)이라 부른다. 바울은 그를 ‘이 세상의 신’이라 부른다(고후 4:4). 바울에게 있어서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고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죄악된 행위를 유혹하고 부추기는 자이며, 심지어 세상 사람들의 예배의 대상으로 자신을 높이는 자이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고전 8:5)

넷째, 세상은 죄가 만연한 곳으로 묘사된다. 바울은 죄의 보편성을 생각하면서 만약 사람이 죄인들과의 접촉을 피하기를 원한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15:9~10)

다섯째, 세상은 세속적이고 유물론적인 관심의 영역을 말한다. 대부분 세상적인 관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무시하게 만드는 유혹으로 간주된다. 세상의 유혹이라는 밭에는 말씀의 씨앗이 자랄 겨를이 없다. 마치 가시 떨기에 뿌려진 씨와 같다. 여기서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가리킨다(막 4:19). 한편, 성경에서 세속적이라 함은 주로 재물과 관련을 둔다. 세속적인 세상과 세상의 부를 취하는 것은 영혼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한다(막 8:36). 사람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한다(마 6:24).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한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이 이해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이렇게 신약의 저자들은 ‘세상’을 세속적인 곳으로 묘사한다. 다시 말해 세상을 세속적인 가치들의 조직적인 체계로 본다. 이 체계는 마치 군대 조직과도 같아 세상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자만과 교만으로 나름대로 질서와 조직망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체계는 언제나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이 추구하는 바를 질타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맞서는 존재이다. 이들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것이라면 모조리 거부하고 대적하고 핍박하고 모함하고 살해하고 저주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같은 세상에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는 것이 마치 양들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마 10:16)고 하셨다.

한편으로 신약성경 전체는 교회와 세상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이 둘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다. 주님은 교회와 세상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주님은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요 14;17)라고 하시며 세상의 영과 성령이 상호 대립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토저(Tozer)는 “교회와 세상을 갈라놓는 심연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와 나사로 사이에 끼인 구렁만큼이나 크다”고 했다. <계속>

최더함(Th.D/역사신학,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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