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 1:10-11)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중,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주님의 큰 음성을 듣는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은 소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던 교회들로, 그 지역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를 담아낸 이름이기도 하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한 도시 안에 한 교회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지역명이 교회의 이름이 되었다. 우리나라 초기 교회도 ‘정동교회’, ‘동대문교회’, ‘새문안교회’, ‘남대문교회’처럼 지역을 드러내는 이름을 사용해 왔다. 반면 오늘날에는 ‘사랑의교회’, ‘명성교회’, ‘주님의교회’, ‘새에덴교회’처럼 신앙적 의미를 담은 이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교회가 시대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것인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교회의 이름을 어떻게 정할지는 교회의 자유이지만, 교단에 속한 교회라면 ‘예수교장로회 ○○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교회’처럼 교단을 밝히는 것이 우리 전통이다. 이것은 단지 행정적 절차 때문만이 아니라, 그 교회가 어떤 신앙고백과 교회 질서 안에 서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학적 고백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이단·사이비 단체가 정통 교회의 이름을 모방하거나 교단을 사칭해 혼란을 주는 일이 많다. 교단명을 밝혀 두면 성도들이 교회 이름만 보고도 신앙적 정체성을 분별할 수 있는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다.

교회 이름을 정할 때 또 하나 질문이 생긴다. 이미 다른 교회가 사용하는 이름을 우리도 사용해도 되는가? 반대로, 우리 교회 이름을 다른 교회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가? 예컨대 ‘삼성‘, ’Google“, ‘Apple’ 과 같은 기업의 명칭은 그 경제적 가치만 해도 어마어마해서 상호(상표)로 등록해서 함부로 도용하지 못하게 법으로 엄격하게 보호한다. 교회의 이름도 그럴까 ? 가령 ‘사랑교회’, ‘소망교회’, ‘믿음교회’, ‘은혜교회’와 같은 이름을 한 교회에서만 사용하고 다른 교회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상표(상호)등록을 할 수 있을가 ? 한 마디로 ‘아니오’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의 언어로서 어느 한 개인이나 교회가 독차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이름을 가진 교회가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것이 흔한 이유이다. 법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이러한 보편적 개념을 담은 명칭은 상표(상호) 등록 요건인 ‘다른 명칭과의 식별가능성’이 없어서 허용되지 않는다. 실제 어느 교회에서 ‘찾아가는 교회’라는 명칭의 상호등록 신청을 하였다가 식별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된 반면 ‘광주중앙교회’는 식별가능하다는 이유로 상표등록에 성공한 케이스가 되었다. 그래서 단순한 명칭만으로 식별력이 부족할 경우, 교회 로고(심벌마크)와 결합하여 등록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온누리교회’, ‘지구촌교회’처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교회의 이름을 전혀 무관한 교회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우리 법은 이러한 이름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표지’로 보아 보호하고 있다. 종교단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뚜렷이 알려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명한 교회 이름은 상표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보호된다는 뜻이다.

교회 이름 관련 분쟁은 주로 교회가 분열되거나, 이단‧사이비 단체가 기성 교회의 이름을 도용할 때 발생한다. 교회 이름이 상표 등록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교회 이름은 교회의 '총유' 재산으로서 "종전 교회의 실체적 동일성을 유지하는 측"에 사용권을 인정하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그에 따르면 교회의 재산과 명칭(이름)에 대한 권리는 교회에 남은 잔존 교인들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의결권을 가진 교인의 3/2 이상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교단 탈퇴 및 변경을 결의했다면, 이 다수파가 종전 교회의 실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명칭과 재산권을 가진다.

성경에서 이름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과 정체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약탈자라는 이름 ‘야곱’을 승리자라는 이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고 그 후손들을 그분의 백성 삼으셨다. 오늘의 교회도 이름을 정할 때 기도로 구하며, 그 이름 속에 하나님의 소명을 담으려 한다. 그러나 이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교회의 실상이 그 이름과 다르다면 오히려 주님께 죄송한 일이 될 것이다. ‘화목교회’가 다툼으로 가득하고, ‘사랑제일교회’가 서로 미워한다면 그 이름은 교회의 부끄러움이 된다. 교회 이름은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신앙의 고백이며 세상 앞에 드러내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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