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목사
이선규 목사

본문의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잘 견디며 살아왔다. 그러나 하란에서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형 에서가 분노를 품고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어찌 야곱에게만 있겠는가. 우리 앞에도 환난과 시련이 갑자기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먼저 우리에게는 ‘마하나임’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야곱은 모든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다.

야곱은 과거 형 에서를 피해 라반의 집으로 도망갈 때, 보따리 하나만 짊어진 채 집을 떠나야 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이슬을 맞고 밤을 지새우던 바로 그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상황은 다시 위태로워졌다. 잠시 후면 형 에서를 만나야 했고, 어쩌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사자를 보내셔서 그를 만나주시고, 닥쳐올 혼란을 대비하도록 도와주셨다.

위기를 극복하고 헤쳐 나가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 속에서 야곱을 축복하시기 위해 얍복강가에 임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과거 에서는 야곱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야곱은 형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야곱은 형의 분노를 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형에게 바칠 예물을 여러 떼로 나누어 앞서 보내며 준비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때 야곱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성경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다”고 말한다. 공동번역은 이 장면을 “덜컥 겁이 났다”고 표현한다. 야곱은 얼마나 괴로웠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겠는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진영을 나누어 보냈겠는가.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훗날 에서를 만날 때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한 것은 단지 장자에 대한 예를 갖춘 행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는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의 마음은 덜컥 내려앉았고, 두려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을 것이다. 우리도 세상을 살다 보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을 만난다. 그러나 바로 그 밤, 하나님께서 얍복강가에 임하셔서 야곱에게 새로운 힘을 주셨다.

야곱은 답답했다. 우리도 때로는 답답할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야곱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다.

그렇다.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신다. 내일 일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바다에 풍랑이 일 때 예수님께서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며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처럼, 주님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다.

야곱은 위대한 신앙인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이라 불릴 만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 속 야곱은 불안과 초조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지만, 때때로 근심과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연약한 그릇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 찾아오신다는 사실이다. 야곱을 만나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도 만나주시고, 야곱에게 이스라엘의 축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야곱은 이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갔는가. 야곱은 이렇게 기도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우리도 주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을 굳게 붙잡고 간구할 때 새 힘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게 하시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 목적과 방향을 바로잡아 주시기 위해 그를 찾아오셨다. 야곱에게 있어 한때 재물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결국 방황하게 된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원하신 삶은 무엇인가. 더 이상 ‘속이는 자’ 야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 ‘이스라엘’로 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속이는 자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모든 잘못된 관계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도 새로워진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찾아오신다.

야곱은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다. 단순히 기도의 양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야곱의 기도를 살펴보자.

첫째, 야곱의 기도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였다.

야곱은 과거 형의 약점을 이용해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챘다. 그 일로 그는 집을 떠나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옛 공포가 다시 야곱을 찾아온 것이다.

야곱은 그동안 많은 재물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형이 자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재물이 죄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 야곱의 기도는 가족의 생사를 건 기도였다.

야곱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는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와서 자신과 가족들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셋째, 야곱의 기도는 홀로 하나님께 강청하는 기도였다.

성경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홀로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상태다. 고독하고 캄캄하며 적막한 환경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야곱은 홀로 남아 하나님께 기도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복잡한 생각과 인간적인 계산, 감정과 상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정직하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다시 찾게 된다.

마침내 야곱은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실수,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야곱을 언약의 상속자로 변화시키셨다.

우리 인생도 야곱과 같이 멀고 험한 나그네 길을 걷고 있다. 우리도 야곱처럼 절박한 위기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기도해야 한다.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옛 사람이 깨어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다. 두렵고 답답한 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고 느껴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신다. 그리고 우리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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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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