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15–19절에서 바울은 첫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대비한다. 본문에는 “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와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바울은 두 사람을 통해 인류의 낡은 역사와 새로운 역사를 보여준다.
아담의 범죄는 한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인류의 머리이자 대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다.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다. 첫 아담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다.
바울은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고 표현한다. 사망은 단순히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현상이 아니라, 죄와 함께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권세가 되었다. 인간은 생명을 원하면서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선을 행하고자 하면서도 죄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첫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낡은 역사 안에서는 누구도 자기 힘으로 이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다”고 선언한다. 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물은 그보다 더욱 풍성하게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 죄의 영향력이 크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죄보다 작지 않다. 사망의 권세가 강하지만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보다 더욱 강하다.
심판은 한 사람의 범죄로 정죄에 이르게 했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많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하심에 이르게 한다. 인간의 죄는 하나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모든 죄를 덮고 죄인을 의롭게 한다. 은혜는 죄의 크기에 겨우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죄를 뛰어넘어 넘치도록 주어진 선물이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존재가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셨다. 첫 아담은 흙에 속한 사람으로 죄와 사망의 역사를 열었으나,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는 의와 생명의 역사를 여셨다. 아담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음을 향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믿는 자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은 대표와 연합의 원리다. 아담과 연합된 옛사람에게는 아담의 불순종과 죄의 결과가 나타나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이 주어진다. 머리의 결정이 온몸에 영향을 미치듯, 누구를 머리로 삼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인간의 삶과 운명을 결정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며, 그분과 연합한 자에게 생명이 흘러온다고 증언한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 연합을 보여준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의와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옛 아담에게 속한 삶에서 벗어나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 복음이 여는 새로운 삶이다.
바울은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한다. 아담의 죄의 핵심이 불신앙과 불순종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삶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 한 분의 순종으로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사망 아래 있던 자가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
십자가는 단순히 한 의인이 죽은 사건이 아니다. 인류를 대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 사건이다. 우리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새로운 사람이 살아가게 된다. 바울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단지 사망의 권세에서 겨우 살아남는 자가 아니다. 바울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사망이 우리 위에서 왕 노릇 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은혜로 주어진 새로운 지위와 권세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아직도 첫 아담의 불신과 불순종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그분의 믿음과 순종을 따르고 있는가. 우리의 옛사람은 죄와 사망에 속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와 생명에 속한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힘만을 바라보며 낙심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범죄로 정죄가 임했지만,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로 의롭다 하심과 생명이 임했다. 죄보다 은혜가 더욱 크고, 사망보다 생명이 더욱 강하다.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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