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
한평우 목사

지중해는 한없이 잔잔하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도 꿈꾸는 소년의 순수한 마음처럼…. 세상은 너무 쉽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타산으로 바꾸어 버리지만 말이다.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곁을 몰래 빠져나온 어거스틴은 로마로 가는 배에 승선하자 비로소 긴장감이 풀리고 안도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내 그는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홀로된 어머니에 대한 착잡한 마음이 일어났다. 더 나아가서 어머니를 속였다는 죄책감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죄의 속성은 항상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고 보암직한 모습이나 그것을 따서 베어먹는 순간 후회가 스멀스멀 찾아온 것처럼…. 어머니는 오직 맏아들을 의지하는 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 죄스러움이었다.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로마의 오스티아 항구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현재, 거주하는 사람이 없는 마치 폼페이의 같은 모습이지만 당시는 인구가 5만여 명이 사는 왕성하고 활기찬 도시였다. 극장이나 신전, 그리고 체육관과 목욕탕, 상가들, 그리고 로마시대의 아파트인 인슐라의 유적, 그리고 어부들의 조합을 묘사한 물고기를 모자이크한 도로는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원전 4세기부터 거주한 작은 바닷가의 마을을 클라우디우스(Claudius,BC10-AD54) 황제가 인공 항구를 만들었다. 본래 로마제국의 제일 큰 항구는 보디올(행28;13)이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에서 밀을 수입하려 할 때 보디올 항구에서 하역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거룻배나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까지 200여Km를 물품을 이동하는 일은 번거롭고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특히 우기철에는 더욱 낭패스러웠다. 로마 시민들에게 빵을 공짜로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테베레강 하구에 만들어진 항구가 바로 오스티아 안티카(Porto Ostia Antica) 항구다.
거기서 거룻배로 오스티아 항구에서 잇대인 테베레강을 이용하여 물자를 왕궁 가까운 곳으로 손쉽게 이동하도록 도모했다.

어거스틴은 오스티아(Antica Ostia) 항구에 도착한 후 열병에 걸렸다. 정신적 자책감 및 고민으로 무리해서 열병을 방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열병은 대개 말라리아를 의미했다. 동거하는 여자가 함께했는지 알 수 없으나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당시 약이 없었기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병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오스티아 항구 도시는 어거스틴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소다. 이유는 밀란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 칼타고로 돌아가려고 이곳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장례를 치른 곳이다. 이곳에서 모니카의 묘지 덮개를 발견하여 근처 교회당에 보관하고 있다.

오스티아 안티카
오스티아 안티카

그런데 오스티아 안티카는 도시 계획이 특이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가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입구의 길 좌편으로는 묘지들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묘지를 도시 변두리나,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한다.

그런데 오스티아 안티카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치 않던 묘지들을 통과하도록 구성했다. 묘지는 오래된 것도 있고 방금 장례식을 치른 묘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묘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저건 삼촌 묘지네, 나도 언젠가는 저곳으로 가겠지?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남다른 꿈을 가지고 로마에 왔기에 가르치는 일을 도모하였다. 그래서 로마에서 교사직을 얻었다. 그런데 로마에서의 교사직은 칼타고에서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칼타고의 학생들은 학업 분위기가 엉망이었는데 로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업에 관심이 없었기에 학습 분위도 형편없었다. 콘스탄틴 대제가 로마를 통일한 이후 천 년 동안이나 수도로서 명맥을 유지해 온 유서 갚은 곳이었는데, 밀란으로 옮김으로 시민들은 실의에 차 있었다. 이런 현실은 로마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밀란 시장이 로마시장에게 교사 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로마시장은 교사로서 탁월한 어거스틴을 천거하였고 어거스틴은 당시의 서로마 수도인 밀란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다.

영적 기근으로 전전긍긍하는 어거스틴을 밀란의 감독 암부르시우스를 만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하신 사건이었다. 로마에서 밀란까지 현재의 고속도로로 600Km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시대에는 훨씬 더 먼 길이었을 것이다. 당시 로마에서 밀란으로 가는 길은 하나는 아우렐리아(Via aurelia)가도를 따라 제노바를 거쳐 가는 길, 또는 비아 까시아(via Cassia)를 통해 피렌체를 통해 가는 길, 또는 비아 에밀리아(Via Emilia)를 선택하여 리미니를 거쳐 가는 길, 등등 몇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나 어거스틴은 드디어 밀란에 도착했다.

아마도 많은 시간 즉, 한 달여를 걸어서 갔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직선적 개념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길을 진행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인생일 뿐이다. 선한자는 선한 대로, 악한 자는 악한 대로 말이다. 그 과정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이루며 가느냐는 성도에게 주신 거룩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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