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 박진탁 명예이사장이 8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본부에 따르면 노환으로 인해 입원 치료 중이던 박 이사장은 이날 새벽, 심정지로 영면에 들었고 10일 오전에는 생전 뜻에 따라 의학발전을 위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한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삶을 강조하며 1991년 본부를 창립하고, 본부 이사장(2014~2025)을 지낸 고인은 헌혈 및 장기기증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포장, 의인상, 영곡봉사대상, 한신상 등을 수상했다.

일생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한 그는 생존 시 신장기증을 실천한 후 사후 장기기증 및 인체조직기증, 시신기증을 약속했으나 안타깝게도 고령으로 인해 시신기증 외에 다른 기증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1991년 1월 24일, 박 이사장은 한양대학교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신장 하나를 기증했다. 당시 국내 최다 헌혈자 중 한 사람이었던 박 이사장은 1968년 우석대학교 병원(現 고려대학교 부속병원) 원목으로 있던 때에 한 행려환자를 위해 첫 헌혈을 실천한 뒤 본격적인 헌혈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피를 사고파는 매혈이 사라지고 헌혈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을 때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한 교민이 뇌사 상태가 되어 장기기증을 실천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피뿐 아니라 몸속 장기까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박 이사장은 곧장 귀국해 자신이 먼저 신장 하나를 기증하며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국내에서 장기매매가 성행하던 1991년, 생존 시 신장기증을 결심한 그를 향해 주변에서는 무모한 일이라며 만류가 이어졌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곧장 행동으로 옮겼던 박 이사장은 “내가 며칠간 고통을 견디면 한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데 모른 척 할 수 없다”며 묵묵히 기증을 준비했다.

이후 그의 실천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었다. 박 이사장이 국내 최초로 순수 신장기증을 실천한 1991년에만 23명이 그의 뒤를 이어 신장을 기증했고, 지금까지 본부를 통해 969명이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했다. 박 이사장의 아내인 홍상희 씨 역시 남편을 따라 1997년 이름 모를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해 부부 신장기증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뇌사 장기기증인 양희찬 상병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박진탁 이사장
뇌사 장기기증인 양희찬 상병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박진탁 이사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1991년 생존 시 신장기증을 시작으로 국내 장기기증 운동의 막이 오르며 대대적인 캠페인도 전개됐다. 이후 대학, 기업, 군부대 등으로 장기기증 캠페인이 확산되며 120만여 명이 본부를 통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다.

박 이사장은 국내에 장기기증 운동을 정착시키며 제도와 문화 개선 등에도 큰 기여를 했다. 장기매매 근절에 목소리를 내며 2000년 국내에서 처음 시행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정에 앞장섰고, 긴급 상황 시 장기기증 의사를 신속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의 노력으로 2007년부터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희망 의사를 표시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21년에는 본부에 유산 기부 1억 원을 약정하며 장기기증 운동 활성화를 위한 도움의 손길도 내밀었다.

고인의 장례식은 본부 법인장으로 8일부터 엄수되며 빈소는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 103호실, 발인은 10일 오전 11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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