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Unsplash/François Genon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나이트클럽 ‘패브릭(Fabric)’과 함께 콘서트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패브릭은 과거 마약 관련 사망 사건으로 2016년 영업허가를 취소당했던 클럽이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세인트폴 대성당은 패브릭과 다년간 협약을 체결하고 2030년까지 대성당 내 콘서트 개최에 대한 독점권을 패브릭에 부여했다. 첫 공연은 오는 10월 29일(이하 현지시간) 열릴 예정이지만, 공연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패브릭 공동 창립자인 카메론 레슬리는 이번 협약을 “런던의 매우 다른 두 영역이 놀랍고도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패브릭이 오랫동안 음악을 통해 다양한 관객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으며, 이처럼 독특한 장소에서 공연을 개최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밝혔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방문객 참여 담당 책임자인 산드라 린스 팀브렐은 이번 행사가 사람들이 역사적인 건물을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발견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선된 뛰어난 콘서트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대성당을 찾는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겠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공연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이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으며, 대성당의 음향과 건축적 특성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이전에도 음악 공연을 개최해왔다. 2023년에는 음악가 RY X의 공연이 열렸으며, 2024년에는 가수 패티 스미스의 공연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협약을 둘러싸고 특히 논란이 된 것은 공연 장소가 영국의 국가적 영웅으로 꼽히는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무덤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이다.

넬슨의 후손들은 이번 행사를 넬슨의 유산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사람들이 “무덤 위에서 춤을 추도록”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넬슨협회 회장이자 넬슨의 형제의 후손인 페레그린 후드는 “더 이상 신성한 것은 없는가”라며 “영적 온전성과 오늘날 기독교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슬픈 반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인트폴 대성당이 이 같은 방식으로 활용되는 것은 “매우 우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넬슨협회 언론담당자인 앤디 스미스 역시 세인트폴 대성당을 “이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성당”이라고 평가하면서, 이곳에서 레이브나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불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성당 측은 공연이 모두 좌석제로 진행되며 관객들에게 공연 내내 착석하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넬슨의 무덤이 있는 지하 납골당(크립트)에서는 공연이 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란은 영국 내 다른 성공회 성당에서 진행된 유사한 행사와도 맞물리고 있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2024년부터 ‘사일런트 디스코’를 개최해왔으며, 비판자들은 이를 조롱 섞인 표현으로 ‘성당 본당에서 열리는 레이브(rave in the nave)’라고 부르고 있다.

당시 행사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에는 1,6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청원 주최자인 카제탄 스코론스키는 이러한 행사가 젊은이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이끌지 못할 것이라며, 오히려 “오락이 하나님보다 우리의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3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적 건축물이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했으며, 1666년 런던 대화재로 기존 중세 성당이 소실된 뒤 현재의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는 영국 성공회 런던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인트메리대학교 트위크넘 캠퍼스의 조직신학 교수인 제이컵 필립스는 과거 1980~1990년대 레이브 문화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패브릭과 이번 협약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내놓았다.

필립스 교수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당시 레이브 문화에도 종교적 색채가 존재했다며, 천국과 성경의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가사를 사용한 음악이 있었고, 흔히 엑스터시로 불리는 마약 MDMA 역시 성인들이 경험했다고 주장했던 영적 체험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레이브 문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중독과 폭력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패브릭 역시 마약 관련 사망 사건으로 한 차례 영업을 중단했던 클럽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필립스 교수는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일상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하는 삶과 연결돼 있으며, 헌신과 희생을 통해 세워지는 안정적인 공동체, 특히 가정생활이 춤추는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경험하는 연대감보다 더 지속적인 의미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취한 상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차이를 잃어버릴 경우 성당이 “중년 레이브족을 위한 놀이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세인트폴 대성당의 수호성인인 사도 바울 역시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되 기독교 신앙을 규정하는 가르침을 포기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런던 패링던 지역에 위치한 패브릭은 1999년 문을 연 이후 런던을 대표하는 전자음악 공연장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2016년 이즐링턴 구의회는 클럽 내부의 지속적인 마약 문제를 이유로 영업허가를 취소했다. 같은 해 클럽 내부에서 마약과 관련된 별개의 사건으로 18세 남성 2명이 사망했다.

패브릭은 이후 이즐링턴 구의회 및 런던경찰청과 새로운 운영 조건에 합의하면서 2017년 1월 영업을 재개했다. 새 조건에는 입장 가능 최소 연령 상향과 보안 강화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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