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하웰 박사의 기고글인 ‘인도의 새 법, 기독교인의 긍휼과 구호 활동을 범죄로 만들 수 있다'(India's new law could turn Christian compassion into a crime)를 9월 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리처드 하웰 박사는 케일럽 인스티튜트(Caleb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총장이다. 그는 1977년에 설립된 하나님의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 Church of God)의 의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고, 가난한 아이를 가르치고, 병든 이를 위해 기도하며, 누군가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설명하는 일이 어느 순간 ‘범죄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질문은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뭄바이가 속한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는 10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8월 28일 새로운 ‘종교의 자유법(Freedom of Religion Act)’이 발효됐다. 이 법은 강압과 사기, 무력, 허위 사실, 유인, 위협 또는 부당한 영향력을 통한 개종을 금지한다.
이러한 원칙 자체에 반대할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요된 개종’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위협이나 사기, 물질적 압박에 의해 이뤄진 신앙 고백은 기독교적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기독교적인 긍휼이 언제 ‘유인’으로 해석되고, 기독교적 증언이 언제 ‘부당한 영향력’으로 간주되는지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마하라슈트라주 법에 따르면, 개종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 그 개종이 자발적으로 이뤄졌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질 수 있다. 이 점은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사람에게 우려를 낳을 수 있다.
기도를 위해 ‘증빙’이 필요한 시대
그 여파는 이미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온다. 마하라슈트라주의 일부 소규모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기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참석했다는 내용의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진다. 기독교 집회가 방해를 받거나 불법 개종 혐의로 문제 삼아지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일부 교회는 CCTV를 설치하고 각종 예방 조치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가족의 고통 때문에 기도 모임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여성은 자신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어떤 학생은 기독교 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의심이 짙어질수록, 그리스도인들이 평범한 제자도의 실천으로 여기는 행위가 전혀 다른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기도가 개종을 위한 것이었는가, 음식 제공은 종교적 유인을 위한 것이었는가, 교육은 신앙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었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인트 자비에르 대학(St. Xavier’s College) 총장 프레이저 마스카레냐스는 최근 인도 언론을 통해 개종 금지법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경고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인도에서 기독교적 섬김은 단순한 홍보 전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많은 기독교 단체가 소외된 지역사회에 학교와 대학, 병원, 고아원과 구호기관을 세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사랑하셨기에 이웃을 섬긴다는 신앙적 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개종은 단순히 종교적 꼬리표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이 논쟁 속에는 ‘개종’에 대한 더 깊은 오해도 숨어 있다. 현대 정치와 행정의 언어에서 개종은 흔히 한 종교 집단에서 다른 종교 집단으로 공식적인 소속을 옮기는 일을 뜻한다.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초대한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마 28:19).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회심은 단순히 종교적 이름표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깊다.
신약성경에서 ‘메타노이아(metanoia)’는 회개를 뜻한다. 생각과 마음, 삶의 방향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인도에서 ‘지반(jeevan)’이 삶 자체를 의미한다면, 기독교적 회심은 결국 ‘파리바르티트 지반(parivartit jeevan)’, 곧 변화된 삶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교적이나 신분증에 적힌 종교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부패와 증오, 착취와 불의 속에서 살아간다면 그것만으로는 기독교적 회심의 본질을 보여주지 못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새로운 사회적 범주로 옮기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도록 부르셨다.
따라서 기독교의 메시지는 단순히 “당신의 종교를 바꾸라”는 말로 축소될 수 없다. 그보다 더 깊은 초대가 담겨 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라는 초대다.
그리스도인은 강압을 거부하면서도 복음 증거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
이런 구분은 교회에도 무거운 책임을 요구한다.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사기와 강압, 조작을 통해 얻어진 개종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거부해야 한다. 복음에는 속임수가 필요하지 않다. 빈곤이나 질병, 교육, 인도주의적 지원을 이용해 취약한 사람에게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도록 압박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음식을 받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적 구제라고 보기 어렵다.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면 은혜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끝내 기독교인이 되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랑이어야 한다.
그러나 강요를 거부하는 것이 곧 복음을 증거할 권리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의 자유는 마음속으로 특정 신앙을 믿을 자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말할 자유, 질문할 자유, 바꿀 자유, 거부할 자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려해 보도록 권유할 자유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의 자유는 결국 태어날 때 부여받은 종교적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자유에 불과해질 수 있다. 이 원칙은 기독교인뿐 아니라 힌두교인, 무슬림, 시크교인, 불교인, 무신론자 등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국가는 명백한 사기와 강압, 위협을 처벌할 정당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자유로운 설득이고 어디서부터가 부당한 종교적 영향력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양심의 영역까지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기 시작하면 종교의 자유 자체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섬김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공포에 빠지거나 도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을 준수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인권 침해가 발생하면 기록하고, 합법적인 법적 구제를 모색하며, 기독교 집회가 공격받을 때는 공정한 치안과 법 집행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교회의 사명을 다시 정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아이들을 계속 가르쳐야 하고, 병든 사람들을 계속 돌봐야 한다. 굶주린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계속 말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 인구학적 세력을 확장하려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기독교 제자도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는 강압을 처벌해야 하고, 사기와 위협도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긍휼 그 자체가 범죄의 정황으로 의심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인도에 필요한 것은 이웃을 섬기는 기독교인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섬김이 누구의 눈에도 강압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일 만큼 투명하고 이타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지는 일일 것이다.
짙은 의심에 대한 교회의 대답은 결국 ‘변화된 지반’, 곧 변화된 삶이어야 한다. 복음 증거에는 담대하고, 정직함에는 타협이 없으며, 사랑에는 아낌이 없는 삶이다.
법은 종교적 신분의 변경을 규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변화된 삶 자체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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