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일 모로의 기고글인 '악마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해답은 퇴마가 아니다'(Demons are real. Exorcism isn't the answer.)를 9월 1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데일 모로(Dale Moreau)는 성서학 학사(BA), 목회학 석사(MDiv), 성서신학 및 성경언어학 박사(PhD) 학위를 취득했으며, 30년 동안 목회자로 섬겼다. 또한 대학과 신학교에서 강의했으며, 55년 넘게 글을 써왔다. 그의 저술은 학술 문헌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현재 그는 서브스택(Substack)에서 ‘Theological Voice’를 운영하며, 목회자와 학자, 학생들을 위해 성경이 담고 있는 초자연적 세계관을 재조명하고 회복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대부분의 기독교인에게 어둠의 권세에 대해 묻는다면 대체로 두 가지 반응 가운데 하나를 듣게 된다. 한쪽은 모든 고난과 문제를 쫓아내야 할 악령의 역사로 본다. 반대쪽은 귀신과 악한 영의 존재 자체를 현대 세계가 이미 극복한 미신의 잔재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두 극단을 모두 거부한다.
첫 번째 오류는 기독교인의 삶을 끝없는 축사 사역으로 바꿔놓는다. 모든 질병과 좌절, 우울감과 갈등을 특정한 영적 존재와 연결하고, 그 이름을 지목해 결박하거나 꾸짖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역 단체들은 특정 도시나 지역을 지배하는 영적 존재를 지도처럼 분류하고, 그 영향력을 깨뜨리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기도 한다. 두 번째 오류는 보다 조용하지만 그만큼 심각하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축사 사역을 1세기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오해한 결과로만 해석하고, 바울의 영적 전쟁 언어를 단순한 비유로 치부하며,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현대인에게 불편한 낡은 개념 정도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귀신으로 가득한 세상’도, ‘귀신이 전혀 없는 세상’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이 보여주는 세상은 실재하는 초자연적 권세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이 이미 결정적으로 패배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전문적인 축사 기술이 아니라 복음이다.
성경은 영적 권세를 실제 존재로 말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 표현을 단순히 나쁜 습관이나 사회적 압력을 묘사하는 비유로만 읽기는 어렵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 세계를 넘어선 영적 권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구약성경에서도 나타난다. 신명기 32장 8절의 고대 본문 전통 가운데 일부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시고, 열방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연관해 배치하신 것으로 묘사한다. 시편 82편은 그러한 영적 존재들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우며, 그들이 공의롭게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 다니엘서 10장 역시 비슷한 그림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파송된 천사는 “바사 왕국의 군주”에게 21일 동안 가로막혔다고 말한다. 문맥상 이 존재는 단순한 인간 정치 지도자라기보다 페르시아 제국과 연관된 초자연적 권세로 이해돼 왔다.
이런 본문들은 성경이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보이는 영역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권세들은 이미 패배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성경은 악한 영적 권세가 실재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대등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그들의 결정적인 패배로 묘사한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들을 이기셨다”고 말한다(골 2:15).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순히 개인의 죄 사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죄와 죽음, 그리고 인간을 억압해 온 모든 영적 권세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악한 권세들은 여전히 활동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군대가 아니라 이미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다.
모든 문제를 귀신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분별력이 필요하다. 악한 영의 실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를 악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과 트라우마, 신경학적 질환과 발달장애는 모두 실제로 존재한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조현병,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문제를 단순히 “귀신이 들렸다”고 규정해 의학적 치료나 상담을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무책임함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학과 신앙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기도와 공동체를 통해 일하실 수 있고, 의사와 상담사, 약물과 치료를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 따라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전문적인 치료인지, 목회적 돌봄인지, 혹은 둘 다인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모든 문제를 귀신에게 돌리는 태도는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가로막을 수 있다.
반대로 초자연적 세계를 지워버려서도 안 된다
그러나 반대편의 극단도 피해야 한다. 현대인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성경의 초자연적 세계관 전체를 제거해버리는 것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실제로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사도행전에서도 악한 영들과의 충돌이 등장한다. 바울 역시 교회의 싸움을 단순히 인간의 내적 심리나 사회 구조의 문제로만 묘사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악한 영적 존재의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할 이유도 없다.
영적 권세들은 실재하고, 정신과 의사도 실재한다. 성숙한 분별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고, 각각의 문제를 올바르게 구분하는 데 있다.
영적 전쟁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교회가 실제로 감당해야 할 영적 전쟁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지상대명령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8-19)
이 말씀은 단순히 교회 규모를 키우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의 주가 되셨으며, 이제 모든 민족 가운데 그분의 통치가 선포돼야 한다는 선언이다.
복음이 선포되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으며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될 때, 한 사람의 충성과 소속이 달라진다. 골로새서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아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골 1:13). 바로 이것이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영적 전쟁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새로운 왕께 충성을 돌리는 것이다.
영적 전쟁의 무기는 복음이다
이 점에서 축사 사역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접근은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있다. 신약성경은 교회가 특정 지역을 지배한다고 여겨지는 영적 존재들의 이름을 조사하고, 그들의 계급을 분석하고, 특정 장소를 향해 명령을 외쳐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에베소서 6장은 모든 평범한 신자에게 동일한 전신갑주를 제공한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기도다. 이 목록에서 눈에 띄는 것은 특별한 축사 기술이 아니라 매우 평범해 보이는 신앙의 요소들이다. 진리를 붙들고, 의롭게 살며,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지키고, 구원의 소망을 붙들며,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어둠의 권세를 상대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다.
교회는 숨어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흔히 이 말씀을 교회가 악의 공격을 견뎌낸다는 의미로만 이해하지만, ‘문’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보다 적극적인 그림이 나타난다. 문은 기본적으로 방어를 위한 구조물이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단순히 어둠의 공격을 피해 성벽 뒤에 숨어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복음을 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공동체다. 이 말이 공격적인 정치 운동이나 인간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사람은 적이 아니라 복음의 대상이다.
교회의 전진은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섬기고, 사랑하며,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귀신에 집착하지도, 존재를 부정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삶을 온통 귀신을 찾아내고 결박하는 일로 이해하는 것도 잘못이며, 귀신과 악한 영에 관한 모든 성경의 가르침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도 잘못이다. 성경은 보다 균형 잡힌 그림을 제시한다.
어둠의 권세는 실재하지만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다. 그들은 적대적이지만 전능하지 않고, 활동하지만 최종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교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두려움이나 집착이 아니라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며, 진리와 사랑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영적 전쟁이다.
2천 년 전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제 교회가 받은 명령은 분명하다. 모든 민족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며,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상대명령이며, 그 명령에 순종해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든 신자는 이미 승리하신 왕의 통치를 선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