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는 대화 상대로 자리 잡는 가운데, 교회와 기독교인이 기술의 위험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 입은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춘성 박사(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최근 연구원 홈페이지에 발표한 ‘인공 감정의 시대, AI의 위로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글에서 AI가 제공하는 정서적 도움의 유익과 한계를 살피고, 인간의 사랑과 기독교적 공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 박사는 AI와 대화하면서 사용자가 느끼는 안도와 애착을 가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밤중 연락할 사람이 없거나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AI의 응답이 힘든 시간을 견디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위로의 효과와 인격적 관계는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는 있지만 인공지능은 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마음을 내게 내어주지는 못한다”며, AI의 위로가 인간관계를 돕는 도구를 넘어 관계 자체를 대신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감정을 받아주는 AI, 친절함 속에서 놓치는 질문들
이 박사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가치가 강조되는 반면, 서로 다른 감정 사이의 갈등을 판단할 공동의 기준은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분노가 불의를 발견하게 하고 슬픔이 소중한 것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감정이 언제나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감정은 중요한 신호이지만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최종 기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용자의 감정을 인정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는 AI의 친절함 때문에 자신의 욕구와 선택을 돌아보는 질문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내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지금 내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가 인용한 Collective Intelligence Project 조사에 따르면, 2024년 11월부터 2025년까지 70여 개국 약 8,400명을 대상으로 일곱 차례 조사한 결과,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이나 정서적 지지를 얻기 위해 적어도 월 1회 AI를 이용한다는 응답은 매회 62~67%였다. 응답자의 36.3%는 AI가 자신의 감정을 실제로 이해한다고 느끼거나 의식이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이 박사는 AI가 단순한 업무 도구를 넘어 외로움과 불안을 털어놓는 일종의 ‘정서적 기반 시설’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구와 가족, 목회자에게 나누던 고민을 디지털 서비스에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친밀함에는 상호성과 책임이 따른다
이 박사는 AI 감정 기능의 뿌리인 ‘감성 컴퓨팅’이 인간의 소통과 활동을 돕는 방향에서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감정을 담아 말하기 어려운 이들의 합성 음성에 억양을 더하거나, 발달상의 어려움을 지닌 사람들이 사회적 상황과 반응을 익히도록 돕는 기술 등이 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기술의 유익을 인정하면서도, 사용자에게 정교하게 맞춰진 AI와 독립적인 삶을 지닌 인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웃은 각자의 욕망과 기억, 상처와 소명을 지닌 존재이기에 기대와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듣기 싫은 말을 건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인간의 친밀함에 필요한 조건으로 불투명성, 상호성, 책임성을 제시했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위로받기를 원하는 만큼 상대의 필요에 응답하며, 상처를 주거나 약속을 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AI는 이러한 태도를 언어로 모방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거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반면 인간은 오해와 다툼, 사과와 용서를 거치며 서로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고 밝혔다.
그는 “사랑은 완벽하게 나에게 맞는 상대를 발견하는 일이라기보다 나에게 맞추어지지 않은 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가는 일에 더 가깝다”고 강조했다.
◈신앙의 감정, 자기 위안을 넘어 하나님과 이웃으로
이 박사는 인공 친밀성의 위험이 AI와 가까워지는 행위 자체보다 사랑의 방향이 타인에게서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데 있다고 봤다. 기다릴 필요 없이 취향에 맞는 응답을 받는 관계에 익숙해질수록,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필요한 인내와 희생을 피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C. 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이웃과 다툴 때마다 더 멀리 이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급했다. 이를 통해 인공 친밀성이 “타인을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자기 사랑의 세계”를 만들 가능성을 짚었다.
이어 헤르만 바빙크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을 소개하며,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강도보다 그 방향과 열매라고 설명했다. 강한 감정이나 눈물 자체가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며 겸손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좋은 감정은 자기 자신 안에서 맴돌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밝혔다. 신앙의 성숙 역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웃의 상처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러한 공감의 중심에 놓았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소 보여 주신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이 있는 자리까지 건너가는 일”이라며, 기독교적 공감에는 시간과 수고를 들여 고통받는 이의 곁에 머무는 실천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끝까지 듣고 곁을 지키는 사람과 공동체 필요”
이 박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연민이 구체적인 돌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를 싸매고 여관으로 데려가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놓았다고 짚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AI 감정 기술도 사람을 어디로 이끄는지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 신호를 발견하거나 도움을 받을 기관을 찾고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기술을 무조건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사용자를 실제 사람과 공동체로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이 인간을 자기 안에 가두면 “이전보다 더 많은 위로를 받으면서도 정작 서로의 고통에는 무관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로움을 달래는 기술은 늘어나는데 외로운 사람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줄어드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사람들이 AI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현상이 인간 공동체의 실패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타인에게 판단받거나 부담을 줄까 두렵고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기 어려워 기계를 찾는 것이라면, 교회가 먼저 “우리는 과연 기계보다 더 믿을 만한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성급하게 정답을 제시하거나 판단하기보다, 상처 입은 이들이 비난받을 두려움 없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도들에게도 서로 안부를 묻고 약함을 나누며, 관계에서 생기는 불편함을 견디는 일상의 실천을 요청했다.
그는 “끝까지 들어 주고, 비밀을 지켜 주고, 당장 답을 주지 못하더라도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감정을 나누는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진짜 사람과 공동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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