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2026년 개봉작 '오디세이 The Odyssey'는 기본 배경지식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보게 되면 하나의 판타지 소설이라는 인상밖에 남지 않을 뿐 아니라, 3시간을 보고 난 후에도 '이게 뭐지?'라는 말만 남기게 된다.
대부분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spoiler)'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자제하지만, '오디세이'만큼은 깊은 이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스포'가 필요한 영화이다.
원작이든 각색된 놀란의 영화이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환대(크세니아)’, 또는 '제우스의 법(Zeus's law)이다.
1. ‘제우스 크세니오스’와 고대 그리스 환대 규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크세니아(xenia)’는 낯선 이방인과 맞이하는 주인 사이에 맺어지는 종교적·사회적 상호 계약이자 신성한 관습이었다.
자신의 폴리스(polis)나 영토를 벗어난 나그네는 보호가 없는 위험에 처한 무력한 존재이다. 이 원초적 불안의 공간에서 이방인의 생존을 보장하고 타자를 사회적 질서 안으로 안전하게 편입시키기 위해 정립된 제도적 장치가 바로 제우스의 법으로 불리는 환대 윤리다.
호메로스 서사시의 세계관에서 ‘환대(Hospitality)’는 단순한 개인적 친절이나 의례적 예의를 넘어선다. 올림포스 최고의 주신 제우스는 ‘제우스 크세니오스(Zeus Xenios)’는 환대 규범을 직접 관장하고 집행한다.
신들은 나그네와 탄원자의 억울함을 갚아주는 보복자이며, 이들을 학대하거나 쫓아내는 인간 공동체에는 가혹한 재앙과 파멸을 내린다. 또한 나그네가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의 형상으로 변장한 신일 수도 있다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모든 낯선 자를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맞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했다. 그래서 놀란 감독의 영화에서도 ‘제우스의 법’이라고 표현한다.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에서 환대 장면이 매우 정교하게 전체 저변에 흐르고 있다. 나그네가 처음 방문하는 장소의 문간이나 경계에 도착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면, 주인이 즉시 문밖으로 나아가 손을 잡고 무기를 거두며 안으로 안내한다.
이어 먼지와 피로를 씻어내는 발씻기와 목욕, 기름 바름의 환대가 진행된다. 손님은 집안에서 가장 중앙 좌석에 앉혀진다. 핵심적인 규범은 주인이 나그네의 인적 사항이나 여행의 목적 등을 묻기 전에 반드시 자신이 가진 최선의 음식과 포도주를 먼저 풍성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점이다.
손님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완전히 해소된 뒤에야 비로소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식사 이후에는 노래와 경기 등의 오락이 제공되며 잠지라도 제공된다.
작별의 순간에는 환송 선물이 주어지고, 안전한 여정을 보장하는 호송 또한 뒤따른다. <오는 손님 적대하지 않고, 가는 손님 붙잡지 않는다>는 균형 감각이야말로 크세니아의 완성이다. 『오디세이아』 서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이 크세니아 규범의 엄격한 실행과 파괴 사이의 긴장이다.
환대의 수락과 거부, 충실한 이행과 엽기적 악용은 등장인물들의 문명적 수준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고난과 생존, 그리고 궁극적인 귀향(nostos)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원인이 된다.
2. 오디세우스 귀향 궤적과 환대와 적대의 교차 양상
트로이 함락 직후부터 이타카 왕권의 회복에 이르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환대와 비환대(적대)가 정교하게 맞물리며 진행된다. 각 공간에서 오디세우스가 마주하는 상대들은 크세니아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내는데, 이는 오디세우스의 생존율과 귀환 가능성과 직결된다.
여정의 주요 장소를 원작 기준으로 시간순대로 따라가 보자.

1) 1단계(정복과 약탈): 오디세우스의 12척 함선은 돌아가는 동안 필요한 양식을 위해 이스마로스(키코네스 족)에서 정복과 약탈을 자행한다.
침략자로서 도시를 기습 약탈하고 주민을 살해한다. 이 과정에서 키코네스 족의 반격으로 선원 72명 전사한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1단계 장면들이 생략된다)
2) 2단계(환대의 왜곡): 연꼿(로토스)을 먹는 로토파고스인들의 땅에서 적의 없이 친절하게 환각성 연꽃을 대접받는다. 그러나 병사들은 달콤한 안식 뒤에 귀향 의지를 상실한다. 오디세우스는 전우들을 강제로 태우고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3) 3단계(적대적 비환대): 키클롭스의 섬에 도착하여 동굴에서 외눈박이‘폴리페모스’를 만난다. 괴물 외눈박이는 제우스를 모욕하고 손님들을 산 채로 도륙하여 포식한다. 크세니아의 엽기적 전복을 볼 수 있다. 외눈박이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포세이돈의 귀환 방해가 시작된다.
4) 4단계(모범적 환대에서 박대로): 아이올리아 섬(아이올로스 왕)에 도착하여
한 달간 극진히 대접을 받는다.
귀향에 도움이 안되는 역풍을 담은 9년산 황소가죽 자루를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항해 중 병사들은 가죽부대를 풀어버리게 되고, 다시 아이올로스의 섬에 되올아 오지만, 환대는 적대로 바뀐다.
5) 5단계(극단적 비환대-집단 살육): 라이스트리곤인들이 사는 텔레필로스 섬에 도착한다. 손님을 즉시 잡아먹고 바위를 던져 배를 파괴하며 인간을 작살로 꿰어 사냥한다. 11척의 선박과 대다수 선원은 궤멸되고 오디세우스의 배만 살아 남는다.(* 놀란 감독의 영화에서는 은색 철갑을 입은 거인족으로 나온다)
6) 6단계(치명적 비환대_식탁의 기만에서 적극적 환대로): 아이아이에 섬에서 마녀 ‘키르케’를 만난다. 키르케는 정성껏 잔치를 베푸는 척하며 독약을 먹여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손님들)을 돼지로 바꾸어 버린다. 환대 의례(식사 대접)를 나그네를 적대하는 도구로 악용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몰리(Moly)라는 약초로 키르케의 마법을 무력화시키자, 키르케는 1년간 헌신하며 저승 항로와 귀향 방법을 알려준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와 1년간 동거한 사실은 생략된다)
7) 7단계(과잉 환대-감금과 구금): 혼자 오기기아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를 만나게 된다. 오디세우스를 사랑한 칼립소는 영생불멸을 제안하며 안락을 제공하나 7년 동안 귀향을 불허하고 억류한다. 떠나려는 손님을 보내주어야 한다는 크세니아의 원칙을 위배한 감금이다. 결국 마지못해 보내게 된다.
8) 8단계(이상적 완전 환대): 알키노오스 왕이 다스리는 스케리아 섬(파이악스 족)에서 무조건적 잔치와 예우, 풍성한 선물을 받게 되고, 기적과 같은 호송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포세이돈은 원수에게 환대를 베푼 파이악스인들에게 재앙을 내린다.
9) 9단계(경건한 순수 환대): 고향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는 궁으로 직진하지 않고,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있는 오두막으로 간다. 에우마이오스는 헐벗은 노인 거지에게 자신의 침상을 내주고 가축을 잡아 극진히 대접한다. 신분과 재력을 초월하여 제우스의 법을 순수하게 실현한 크세니아의 절정이다.
10) 10단계(체계적 비환대_환대 찬탈): 이타카 왕궁에는 왕위와 왕의 재산을 노리는 108명의 구혼자 집단이 있다. 수년간 주인의 재산을 탕진하고 걸인 나그네로 위장하여 나타난 오디세우스를 조롱하고 적대한다. 크세니아를 총체적으로 유린한 이들은 모두 처형된다.
3. 비환대 상세보기 :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와 라이스트리곤 족
오디세우스의 귀환 과정 곳곳에 등장하는 괴물들과의 조우는 환대의 엽기적 파괴를 보여준다.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발을 들이며 기대했던 것은 외눈박이의 야만이 아니라, 정당한 환대였다.
“우리는 그대가 나그네를 대접하는 관습에 따라 우리를 환대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선물을 주리라 기대하고 여기로 와서 당신의 무릅을 붙잡고 있는 것이오, 그러니 신들을 두려워 하시오, 우리는 당신에게 탄원자들이라오. 제우스는 나그네와 탄원자들의 원수를 갚아주시는 분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나그네와 항상 함께 하시는 신이잖소”(9권 266-271/현대지성, 2026년 오디세이아 1판6쇄 기준)
그러나 폴리페모스는 자신의 키클롭스 족이 제우스나 그 어떤 올림포스의 신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응수하며 신성한 법을 정면으로 모독한다.
나그네를 화롯가에 앉히고 음식을 대접해야 할 주인이, 반대로 나그네를 자신의 음식으로 삼아 내장과 살과 뼈를 남김없이 먹어치워 버린다. 더욱이 폴리페모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약속한 ‘환대의 선물’은 그를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을 모두 잡아먹은 뒤 가장 마지막에 먹어 치우겠다"는 조롱이었다.(9권 369-370)
이후 보복을 계획한 오디세우스가 포도주를 이용해 우유만 마시던 야수 폴리페모스를 취하게 만들고 올리브나무로 만든 거대한 창으로 그의 외눈을 찔러 눈멀게 한다. 크세니아의 신성한 질서를 파괴한 야만에 대해 단죄이다.
이러한 식인의 공포는 거인족 라이스트리곤들에 의해서도 반복된다. 거인족들은 나그네를 맞이하는 대신 도망치는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을 향해 거대한 바위를 던져 항구에 정박해 있던 11척의 배를 일거에 침몰시킨다. 물에 빠진 선원들을 작살로 꿰어 물고기처럼 운반해 잔치를 벌인다.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와 거인족 라이스트리곤족의 비환대는 낯선 자를 동등한 인격적 주체로 보지 않고 한낱 단백질 공급원으로 취급하는 극단적 ‘크세니아’ 파괴 행위이다.
4. 조건부 또는 변형된 환대 자세히 보기: 아이올로스, 키르케, 칼립소
서사의 중반부는 환대와 비환대가 선명한 단일 색조로 드러나지 않고, 인물의 상태와 윤리적 통찰에 따라 변형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바람의 지배자 아이올로스와 오디세우스가 처음 만났을 때, 아이올로스는 한 달 동안 성심을 다해 환대하며 트로이 전쟁의 무용담을 경청하고, 떠나는 손님에게 유리한 서풍을 제외한 모든 역풍을 소가죽 자루에 담아 선물로 건네며 모범적인 호송의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고향 이타카를 눈앞에 둔 지점에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보물을 독차지하려는 시기심에 눈이 멀어 바람 자루를 풀어버린다. 폭풍에 밀려 다시 아이올로스의 섬으로 되돌아왔을 때 환대의 태도는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
아이올로스는 오디세우스의 처절한 재탄원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저주받은 자를 보살피거나 길을 인도해 주는 것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신성모독"이라 일갈하며 그를 쫓아낸다.
신의 진노를 받았다고 판단되는 자에게서 그동안의 ‘크세니아(환대)’를 거두는 행위는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신의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이아이에 섬의 마녀 ‘키르케’는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나그네들을 집 안으로 환대하고 번쩍이는 의자에 앉힌 후, 포도주와 치즈, 꿀을 버무린 음식을 대접했다. 그러나 이 음식에는 손님들의 이성과 귀향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는 사악한 약물이 섞여 있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지팡이로 쳐서 돼지로 변형시키고 우리에 가두는 행위는, 신성한 환대의 식탁을 인간성을 박탈하고 짐승으로 격하시키는 폭력의 극치였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키르케가 직접 자기 손으로 병사들을 돼지로 빚는다)
그러나 헤르메스 신의 도움을 받아 신비한 약초 몰리(Moly)를 지닌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의 마법을 무력화하고 칼로 위협하자 상황이 역전된다.
키르케는 맹세를 통해 적의를 거두고 부하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놓는다. 이후 그녀의 궁전은 1년 동안 안식과 풍요를 제공하는 진정한 크세니아의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지하 저승(Hades)으로 내려가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구할 것을 조언하고, 귀환시 항해의 위험을 극복할 지혜를 알려주는 인도자로 바뀐다. 치명적 비환대가 고차원적 환대로 바뀐 것이다.
오기기아 섬의 요정 ‘칼립소’의 에피소드는 ‘과잉 환대’가 낳는 역설적 폭력을 보여준다. 칼립소는 난파당한 오디세우스를 구조하여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불로불사를 약속하며 그를 배우자로 삼고자 한다.
그녀의 동굴은 자연의 향기와 포도 넝쿨이 가득한 지상 낙원이었다. 그러나 손님이 자유의지로 떠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7년 동안 그를 섬에 강제로 묶어둔 행위는 환대의 본질적 계율을 심각하게 위배한 불법적 감금이다.
나그네가 머무를 때는 기꺼이 환대하되 떠나기를 희망할 때는 즉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환대의 대원칙이 그녀의 이기적 사랑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밤에는 칼립소의 침대에서, 낮에는 해변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그리워 하는 오디세우스의 고통은 아무리 편안하고 풍성한 물질적 풍요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인간의 근본적 귀향 의지와 자유를 제거하는 과잉된 친절은 본질적으로 비환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5. 이상적 환대 자세히 보기: 파이악스 족의 완전한 크세니아와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크세니아
『오디세이아』 6권~13권까지 펼쳐지는 스케리아 섬의 파이악스 족 서사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크세니아의 모델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을 떠나 바다의신 포세이돈의 폭풍우에 뗏목이 부서지고, 알몸으로 파이악스 족의 섬에 표류한다.
오디세우스를 발견한 ‘나우시카아’공주는 당황한 시녀들을 꾸짖으면서 “이 불운한 사람은 표류하다가 이곳에 왔으니 이제 우리가 이분을 보살펴드려야 해. 나그네와 거지는 모두 제우스께서 보내신 자들이고, 작은 도움도 그들에게는 소중하니까. 그리니 애들아 나그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주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강물에 목욕을 시켜드려라”라며 제우스법의 실천을 종용한다.(6권206-210)
나우시카아는 오디세우스에게 의복과 올리브 기름을 건네 씻게 한 뒤 도성으로 들어오는 안전한 경로를 안내한다.
궁전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알키노오스왕에 의해 환영되고, 알키노오스왕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라오다마스)의 자리를 내어주고 극진하게 음식을 대접한다. 파이악스 왕궁에서 펼쳐지는 이 환대는 호메로스식 환대 의례의 전형적인 하이라이트를 보여준다.
알키노오스는 나그네의 이름과 출신, 목적을 전혀 캐묻지 않은 채 성대한 환영 잔치를 베풀고, 음유시인을 불러 영웅들의 노래를 들려주며 체육 경기를 개최하여 나그네의 피곤과 슬픔을 위로한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동안의 여정을 밝히는 내용이 9권부터 12권까지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파이악스인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오디세우스에게 막대한 양의 금과 은, 청동 솥과 정교한 직물들을 선물로 준다.
이 선물들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획득했다가 바다에 수장시킨 전리품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뿐만 아니라, 파이악스인들은 키잡이나 노가 필요 없이 선원들의 마음과 뜻을 읽고 스스로 항해하는 빠른 배를 제공하고, 깊은 잠에 빠진 오디세우스를 눕혀 하룻밤 사이에 고향 이타카의 모래사장에 안전하게 상륙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환대는 비극적 결말을 초래한다. 자기 아들의 눈을 찔러버린 오디세우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자신의 원수를 고향으로 데려다준 파이악스인들에게 격노하여, 귀항하던 그들의 배를 돌로 변하게 하고 손바닥으로 내리쳐 바다 밑바닥에 깊이 박아 버린다.(13권 160-165)
크세니아의 실천이 인간의 세계에서는 정당한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막중한 위험과 자기희생을 동반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 것이다.(* 놀란의 영화에서는 파이악스인들의 서사는 다루지 않는다)
6. 이타카 내부의 환대와 적대: 에우마이오스의 환대와 108명 구혼자들의 홀대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당도한 고향 이타카는 환대 윤리의 참된 가치와 그 파괴적 타락이 첨예하게 격돌하는 무대가 된다. 아테나 여신의 마법으로 누추한 늙은 거지의 형상을 한 오디세우스는,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초라한 오두막과 오만한 108명의 구혼자들이 점거한 호화로운 왕궁을 각각 방문하면서 환대 윤리를 시험한다.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에서 이루어지는 크세니아는 환대의 가장 순수한 면을 상징한다. 사나운 사냥개들이 달려들 때 거지를 구해낸 에우마이오스는 그가 비천한 유랑 걸인임에도 조금의 망설임 없이 오두막 안으로 맞이하여 빽빽한 나뭇가지를 쌓고 그 위에 자신이 침상으로 쓰던 산염소 가죽을 깔아 자리를 마련해 준다.
에우마이오스는 노예 신분으로서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최선의 가축인 어린 돼지 두 마리를 정성껏 잡아 손님에게 바친다. 감격한 오디세우스가 이 정성 어린 환대에 제우스의 축복이 내리기를 빌자, 에우마이오스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명 대사를 남긴다.
“나그네여, 나그네와 거지는 모두 제우스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니 설령 그대보다 못한 자가 왔다 해도 나그네를 홀대하는 건 도리가 아니오.”(14권 56-58)
에우마이오스는 손님이 식사를 끝낼 때까지 그의 출신을 캐묻지 않으며 밤이 깊어지자 혹한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이 아끼던 두꺼운 겨울 겉옷을 벗어 덮어준 뒤, 자신은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 주인(오디세우스)의 가축을 지키며 밤을 보낸다. 에우마이오스의 이러한 태도는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인간의 영혼 속에서 신을 경외하는 경건함과 손님에 대한 깊은 동정이 사라진 이 시대에 울림이 된다.
반면, 이타카의 왕궁에서 벌어지는 구혼자들의 행태는 환대 윤리를 사적으로 기만하고 권력 찬탈에 이용한 행위이다. 크세니아의 규범상 손님은 주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절제하며 공경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구혼자들은 주인이 부재한 궁전을 무단으로 점령한 채,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를 압박하고, 매일같이 주인의 양과 소, 살진 돼지로 배를 불리며 왕의 가산을 탕진하였다. 게다가 거지의 모습으로 음식을 구걸하러 들어선 오디세우스에게 구혼자들이 가한 폭력과 적대는 제우스 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구혼자들의 우두머리인 ‘안티노오스’는 거지를 잔칫상의 오물로 취급하며 폭언을 퍼붓고 발판을 집어 던져 오디세우스의 등과 어깨를 강타한다. 구혼자 무리 중 암피노모스가 혹시 저 거지가 변장한 신일지도 모른다"며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구혼자들의 오만(휘브리스 hybris)은 박대를 멈추지 않았다.
22권에서 자행되는 궁정 유혈 학살극은 오디세우스 개인의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크세니아를 능멸한 자들에 대한 ‘제우스’의 정당한 심판이자, 정의(dike)의 집행으로 볼 수 있다.
7. 결론 : 환대 vs 박대의 함의
1) 『오디세이아』 전편에 걸쳐 환대와 비환대가 끊임없이 엇갈리는 교차 구조는 인생길 여정 자체가 환대.비환대(홀대)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가 낯선 해안에 표류할 때마다 던지는 정형화된 표현인 "아 내 신세가 처량하구나 나는 또 어떤 사람들의 땅에 온 것인가? 그들은 오만하고 야만적이며 정의롭지 못한 자일까? 아니면 나그네에게 호의적이고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자일까?"라는 탄식은 이를 잘 보여준다.(6권 119-121, 8권572-579, 9권175-176, 13권200-202)
2)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오만(휘브리스)을 규정하는 잣대는, 종족의 종류나 기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며 크세니아(환대)를 아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파이악스족처럼 완벽하고 흠 없는 환대자로 설 수 있는가 하면, 나그네를 도륙하여 먹어 치우는 외눈박이 폴리페포스나 라이스트리곤인들과 같이 추락할 수도 있다.
크세니아의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오디세우스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우티스’(Outis, 아무도 아닌 자 Nobody)’라고 속인다.
타인에 대한 환대가 사라진 곳에서는 인간의 이름과 존엄성 역시 소멸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파이악스 왕궁의 완전한 환대에서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나는 오디세우스다"라며 잃어버렸던 영웅의 이름을 드러낸다.
이타카에 도착하여 걸인의 탈을 쓰고 나타난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환대 규범이 사회 구성원들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시험대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비천한 자의 행색을 한 왕을 맞이한 에우마이오스의 환대와 구혼자들의 적대는, 그들의 외적 신분이 아니라 내면의 도덕적 정체를 발가벗기는 폭로이다.
3) 환대와 비환대의 교차 배열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이유가 된다.
서사시의 플롯은 환대를 파괴하거나 악용한 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파멸을, 환대를 온전히 실천한 자들에게 명예와 보상이 주어진다. 손님을 잡아먹은 폴리페모스는 시력을 잃고 불구가 되었으며, 주인의 환대를 찬탈하고 약자를 능멸한 구혼자들은 궁전 바닥에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반대로 누추한 움막에서 거지를 지극정성으로 섬긴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노예에서 해방되는 영예를 얻었으며, 이방인에게 최선의 배려를 다한 파이악스인들은 이후 후손들에게 불멸의 찬가를 남겼다.
결국 『오디세이아』에서 전개되는 환대와 비환대의 반복적 교차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야만적 파괴의 시대를 통과한 인류가 어떻게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세계 질서를 재구축할 수 있는가를 탐색한 ‘윤리적 오디세이’라 할 수 있다.
(* 이런 면에서 놀란 감독은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전쟁영웅으로 묘사하기보다, ‘거대 목마(giant wooden horse)’로 상대방을 기만하고, 학살과 약탈을 자행한 후 죄책감(guilt)에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각색시켰다고 볼 수 있다.)
서요한 목사
의왕 주는산성교회(예장 백석)
수도권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서울기독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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