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데스먼드 박사
알렉산더 데스먼드 박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데스먼드 알렉산더 박사의 기고글인 '성경 속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었나?'(Where was the Garden of Eden?) 9월 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데스먼드 알렉산더 박사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유니언신학교(Union Theological College)에서 성서학 분야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신성경신학사전(The New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의 공동 편집자이며,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에덴동산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장소 가운데 하나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창세기 2장 8절은 이곳을 “에덴에 있는 동산”으로 소개한다. 이 표현은 에덴동산이 ‘에덴’이라 불리는 더 넓은 지역 안에 자리한 특정 장소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에덴과 에덴동산이 반드시 동일한 범위의 장소였다고 볼 필요는 없다.

같은 구절은 에덴이 “동방에”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동방에(in the east)”로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문맥에 따라 “동쪽을 향하여(eastward)”라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동산의 입구가 동쪽에 있었다고 기록한 창세기 3장 24절과도 잘 어울린다.

네 개의 강이 주는 단서

창세기 2장 10~14절은 에덴과 관련된 네 개의 강을 언급한다. 비손과 기혼, 히데겔, 유브라데다. 히데겔은 일반적으로 티그리스강으로,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강으로 이해된다. 두 강 모두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중동의 주요 하천이며,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기 전에 서로 가까워진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강의 정체는 훨씬 불분명하다. ‘비손’이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2장에만 등장한다. 창세기 2장 11절은 비손강이 ‘하윌라’ 땅을 두른다고 말하지만, 이것만으로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하윌라라는 지명이 등장하지만, 반드시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혼’도 마찬가지다. 역대하에서는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기혼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창세기 2장의 기혼강과 같은 장소라고 볼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창세기 2장 13절에서 기혼강이 ‘구스(Cush)’ 땅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구스는 흔히 동아프리카의 누비아 지역을 가리키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문맥에서는 이란 서부의 카사이트(Kassites) 지역을 뜻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결국 같은 이름이 서로 다른 지명을 가리킬 수 있기 때문에,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지명만으로 에덴동산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에덴동산은 고지대에 있었을까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은 네 강과 동산의 상대적 위치다. 창세기 2장 10절은 한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이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고 기록한다.

존 월튼(John Walton)은 이 구절을 근거로, 에덴에서 나온 물이 동산을 통과한 뒤 네 강의 근원이 됐다고 본다. 그의 해석을 따르면 에덴동산은 여러 강의 발원지가 될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지역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에덴에서 풍부한 물이 솟아 동산을 적시고, 그 물이 다시 여러 방향으로 흘러나가 비손과 기혼,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근원이 됐다는 것이다.

반면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창세기 2장 10~14절이 동산을 적시는 강보다 상류에 있는 여러 수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설명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네 개의 강이 합류해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그 물이 동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따르면 에덴동산의 위치는 페르시아만 상류의 저지대 부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에덴은 ‘하나님의 산’과 연결되는가

그러나 에스겔 28장 13~14절은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하나님의 성산”과 연결해 묘사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산과 연결되는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덴동산 역시 단순한 평지보다는 높은 지역과 관련돼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이 관점에서는 창세기 2장이 에덴을 여러 강의 발원지로 묘사하고 있으며, 동산을 풍요롭게 하는 물이 그곳에서 흘러나왔다고 보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

물론 이것만으로 에덴동산의 위치를 확정할 수는 없다.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지리적 정보는 에덴동산이 단순한 상징적 공간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특정 지역과 연결된 장소로 이해됐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도 위에 정확한 지점을 표시할 정도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된 것은 아니다.

에덴동산은 언제까지 존재했을까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추방된 이후 에덴동산이 얼마나 오래 유지됐는가 하는 점이다. 성경은 동산을 인간이 “경작하며 지키도록” 맡겨진 공간으로 묘사한다(창 2:15). 이는 에덴동산이 자연 그대로 방치된 야생지가 아니라, 일정한 관리와 돌봄이 필요한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동산’이라는 개념 자체도 주변의 들판과 구별되는 일정한 경계를 가진 장소를 암시한다. 창세기 2장과 3장에서 언급되는 ‘들’과 동산이 서로 다른 공간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아담과 하와가 추방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동산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셨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인간이 더 이상 그곳을 경작하고 돌보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동산의 원래 모습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에덴동산이 오늘날까지 동일한 형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위치보다 의미다

그렇다고 에덴동산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태초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이고 신학적인 공간으로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에덴동산의 여러 요소는 이후 이스라엘의 성막과 성전에서 다시 등장한다. 금과 보석, 나무와 생명의 이미지, 동쪽을 향한 입구,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서로 연결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전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장소로 기능했고, 에덴의 이미지와 구조를 여러 방식으로 반영했다.

이 점에서 성전은 일종의 ‘새로운 에덴’처럼 이해될 수 있다.

성경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간다

흥미롭게도 성경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에덴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가 등장한다. 이것들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을 분명하게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단순히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원래 상태로 복원한 장소가 아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처음 시작된 에덴보다 더 크고 완전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인간과 함께 거하신다. 창세기에서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막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생명나무에 접근한다.

결국 성경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동산에서 시작해 회복된 하나님의 도성으로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에덴동산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신약성경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셨고, 궁극적으로는 에덴보다 더 영광스러운 새 창조 안에서 자신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단순히 잃어버린 고대의 장소가 아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볼 때,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