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엘 픽 목사의 기고글인 '비극의 순간,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What should Christians remember amid tragedies?)를 6월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조엘 픽 목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 있는 리뎀션 정통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플로리다 북부의 유난히 추웠던 어느 1월 밤 11시 직후,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세상의 어떤 부모도 결코 듣고 싶지 않을 끔찍한 소식을 알리는 노크였다. 소방관이자 구급대원이었던 23살 된 큰아들이 방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마치 우리 자신도 함께 죽은 것만 같았다. 그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우리의 심장도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이 고통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인생의 가장 깊은 비참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이 악한 세대의 거센 폭풍 속에서 우리 영혼을 지탱해 줄 중심추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 필자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된 세 가지 명백한 성경적 진리가 있다. 새로운 진리들은 아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미 알고 믿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목회자인 필자 역시 수년 동안 분명히 알고 믿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비극의 한가운데서, 이 진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내게 훨씬 더 귀중한 것이 되었다.
1.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
샘(아들)이 죽은 후, 필자는 평소에 자주 하던 대로 글을 읽었다. 성경을 읽었고, 고난과 애도, 상실, 탄식에 관한 책들과 천국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그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놀랍게도 큰 위로가 된 것은 조나단 깁슨(Jonathan Gibson)이 쓴 『달은 언제나 둥글다(The Moon Is Always Round)』라는 동화책이었다. 장애가 있는 딸이 오빠를 잃은 슬픔을 잘 처리하도록 돕기 위해 고른 책이었지만, 결국 필자 자신에게도 그만큼 큰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 얇은 책에서 깁슨 박사는 달의 위상 변화를 비유로 들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설명한다. 이 단순한 비유의 핵심은, 우리의 관점에서 달이 어떤 모양으로 보이든 상관없이 "달은 언제나 둥글다"는 것이다. 때로는 사과 조각이나 짓눌린 오렌지처럼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느다란 빛줄기만 내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이든, 달은 항상 둥글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달에 관한 이 진리는 하나님께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때때로 우리 영혼의 어두운 밤에, 하나님의 선하심은 깊은 슬픔과 끔찍한 상실, 그리고 뼈를 깎는 애도 뒤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눈에 어떻게 보이든 간에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고 증언한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5).
그분은 존재와 행하심, 그리고 모든 길에서 선하시며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말 3:6).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 어려울 때조차, 그분의 선하심이 이해하기 힘든 섭리의 그림자에 가려진 것처럼 보일 때조차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십자가 사건 그 자체보다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 갈보리 언덕만큼 하나님의 섭리라는 짙은 그림자가 그분의 선하심을 깊이 가린 것처럼 보였던 곳은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하나님의 얼굴이 가장 깊이 숨겨진 것처럼 보였던 바로 그 순간에도, 그분의 선하심의 빛은 가장 찬란하고 온전한 '둥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그날에 이것이 진리였다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날에도 이것은 분명한 진리다.
2.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
두 번째 진리는 첫 번째 진리의 필연적인 결과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형들이 악으로 의도했던 것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셨다"고 깊은 고백을 남긴다. 기근을 부르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요셉을 먼저 이집트로 보내신 하나님이시기도 했다. 결국 요셉은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셨던 그 '선'을 보게 되었다. 요셉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고 말한다. 그 백성 안에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과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셉은 구덩이에 빠졌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 발과 목이 차꼬에 매였을 때 등 시련의 한가운데서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고 시험했다. 상황이 어떻게 보이든 하나님은 선하시며, 선을 이루고 계심을 끝까지 신뢰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이었다(시 105:16–19).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선을 살아서 다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감추어진 일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신 29:29). 하지만 필자는 언젠가 영광 중에 하나님 섭리의 태피스트리(직물) 전체를 온전히 마주하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우리는 이 당혹스러울 만큼 어두운 실타래들이 어떻게 그분의 목적 전체에 직조되어 들어갔는지, 그리하여 그 주변을 둘러싼 그분 선하심의 밝은 실들을 얼마나 더 찬란하게 빛나게 했는지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내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세 번째 진리 역시 앞의 두 진리에 수반된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은 특별히 그분을 '사랑하는 자'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특정한 종류의 선, 즉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는 것을 뜻한다(롬 8:29).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빚어내신다. 개인적인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 상황 밖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형성하고 계신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 원하거나 선택할 법한 방식은 아닐지라도, 그분께서 가장 선하다고 아시는 방식대로 말이다.
요즘도 거의 매일 아침, 필자는 아들이 묻힌 묘지로 걸어간다. 어떤 날은 걷는다기보다 절뚝거린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필자의 눈에서 이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몸을 흙에서 다시 살리시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그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날이 오기까지, 매일 아들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흙바닥에 두 가지 그림을 그린다. 하나는 하나님이 언제나 선하심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는 '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선하심의 가장 위대한 표현을 상기시켜 주는 '십자가'다. 그러고 나서 이 고난이 내게 결코 헛되지 않기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것을 사용하셔서 나를 그 아들의 형상으로 온전히 빚어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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