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29–31절에서 바울은 복음이 가진 놀라운 보편성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 구원은 특정한 혈통이나 종교적 표식, 인간의 공로나 자격에 묶여 있지 않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열려 있으며, 이 믿음 안에서는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차별이 사라진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세계는 모든 장벽이 무너진 세계다. 권력을 가진 자나 그렇지 않은 자,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하다. 세상은 사람을 구분하고 서열을 만들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모두가 같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누구도 더 가까운 자리에 설 수 없고, 누구도 더 멀리 밀려나지 않는다. 모두가 은혜 앞에 등거리로 서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고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이 십자가로 무너졌다. 그리스도께서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 복음은 차별을 강화하는 종교가 아니라, 차별을 철폐하고 화목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특정한 사람만의 나라가 아니다. 늙은이와 젊은이, 남종과 여종,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세계다. 복음은 모든 인류를 향해 열려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다. 이것이 은혜의 시대가 가진 놀라운 기쁨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오해를 바로잡는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해서 율법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말한다. 은혜는 순종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참된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고, 믿음은 삶 속에서 선한 열매로 나타난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난다. 은혜를 받은 자가 사랑과 정의, 긍휼과 순종을 저버린다면 복음은 세상 가운데 조롱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지향하던 하나님의 뜻을 성령 안에서 이루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야말로 율법을 굳게 세우는 길이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은혜를 말하면서 삶의 순종은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의 은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로 무너진 담을 다시 세우지 말고, 믿음으로 받은 은혜를 사랑과 순종의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복음은 차별 없는 은혜이며, 그 은혜는 우리를 더 깊은 순종의 길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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