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기도에 관한 소중한 말이 하나 있다. “Prayer is not preparation for the battle; prayer is the battle.” 우리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기도는 영적 전쟁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가 전쟁이다.” 이것은 레너드 레이븐힐(Lonard Ravenhill)의 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전쟁터에 나가기 전 준비운동 정도로 생각한다.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듯,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께 잠시 도움을 구하는 과정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레너드 레이븐힐은 훨씬 더 깊은 진리를 말한다. “기도는 영적 전쟁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 그 자체가 전쟁이다.”

성경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영적 갑주에 대해 설명한 뒤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 갑주를 입은 후에 기도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기도는 갑주를 입은 군사가 실제로 싸우는 전투의 현장이다. 믿음의 방패를 들고, 성령의 검을 잡고, 무릎으로 싸우는 것이다.

야곱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얍복 강가에서 홀로 남았다. 그리고 밤새 하나님과 씨름했다. 창세기는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더니”(창 32:24).

그 싸움은 칼과 창의 싸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야곱은 그날 밤 육체적으로도 지칠 만큼 처절하게 싸웠다.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외쳤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그리고 그 기도의 씨름 끝에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뜻 가운데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도 있다.

여러 주석가와 설교자들이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을 덧붙인다. 하지만 다 엉터리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 어떻게 이길 수 있나?’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본문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천사와의 씨름에서 정말 이겼다. 그게 하나님을 엄청 기쁘시게 했기에, 이후에 야곱의 삶에 현저한 변화가 보이지 않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신 것이다.

환도뼈가 위골된 게임인데, 어째서 이겼다고 말하는 걸까? 그건 본문에 나오는 천사의 고백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창 32:24-25). 여기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는 내용이 보이는가? 결사적으로 덤비는 야곱을 이기지 못해서 반칙을 쓴 것이다.

‘천사=반칙패’, ‘야곱=승’이다. 야곱이 천사가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대시한 이유가 뭘까? 26절에 그 답이 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내용이 보이는가? 그렇다.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에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산 바 있다. 속임수를 가동해서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바도 있다. 하지만 외삼촌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은 후 드디어 소중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야곱”이란 이름대로 남을 속여서 복을 얻으려는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임을 감지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복을 받기 위해 천사가 이기지 못해서 반칙을 쓸 정도로 목숨 걸고 일생일대의 결단을 보인 것이다.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야곱이 변화된 에서를 만난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씨름한 그 밤에 이미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스펄전 목사가 어느 날 교회를 방문한 손님을 지하실로 데려간 적이 있다. 손님은 웅장한 예배당과 수천 명의 성도를 보며 교회 성장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스펄전은 지하실 문을 열며 말했다.

“이곳이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성도들이 예배 시간마다 모여 목사를 위해, 교회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단에서 설교하는 스펄전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지하실에서 싸우고 있는 기도의 군사들을 보고 계셨다. 교회의 승리는 강단 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무릎 꿇은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사탄은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는 것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성도가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하면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 끌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된 기도는 종종 힘들다. 졸음이 오고, 집중이 흐트러지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기도가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실제 전쟁이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 편안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는 성도 역시 영적 저항을 경험한다. 오늘날 교회는 더 많은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더 뛰어난 전략보다 더 뜨거운 무릎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셨다. 역사의 모든 부흥은 강단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골방에서 시작되었다.

기도는 전쟁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이 전쟁의 한복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무릎을 꿇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야곱처럼 필사적으로 붙들고, 스펄전 교회의 성도들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늘의 승리는 언제나 무릎 꿇은 사람들에게 먼저 주어진다. 기도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준비가 아니라 전쟁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는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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