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는 가운데, 한국 신학계와 교계도 AI 시대를 신학적·목회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주요 신학학회들은 'AI와 목회', 'AI 시대의 크리스천의 삶', 'AI와 기술시대의 영성' 등을 핵심 주제로 내세우며, AI 시대 교회의 역할과 신앙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실천신학적 성찰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교계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대해 경계하거나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일상과 교육, 산업, 문화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제는 기술을 단순히 경계하는 차원을 넘어, 신앙과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AI 기술은 이미 교회 현장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설교 자료 조사와 작성 보조, 교회 행정 자동화, 교육 콘텐츠 제작, 개인 맞춤형 성경공부와 돌봄 프로그램 등 활용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관심은 기술 활용의 효율성 자체보다 AI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신앙의 본질에 맞춰지고 있다.
AI가 설교의 구조를 제안하고 방대한 성경 자료를 정리할 수 있는 시대에 설교자와 목회자의 고유한 역할은 무엇인지, 가짜뉴스와 기술 우상화, 인간다움의 약화 등 새로운 윤리적 과제 속에서 크리스천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공동체성과 현장성이 약화될 수 있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성도의 교제와 실천신학은 어떻게 새롭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등이 주요 논의 주제로 제기되고 있다.
◆ AI 시대 목회와 신앙,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복음의 본질
최근 열린 신학 세미나와 학술대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발표가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AI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성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 신앙의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AI 시대 교회의 방향성을 모색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제31회 샬롬나비 학술대회는 '인공지능(AI)과 기독교'를 주제로 개최됐다.
기조강연을 맡은 김영한 박사(샬롬나비 상임대표·기독교학술원장·숭실대 명예교수)는 창세기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은 단순히 높은 지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고 예배하는 영적 존재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AI의 기능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하며, AI의 자동화는 기술의 영역에 머물러야 하며 인간을 초월하는 포스트휴먼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AI를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기술은 어디까지나 중립적이며,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목적과 가치관으로 사용하는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I는 복음을 대신할 수 없는 보조 수단일 뿐이며, 복음의 본질은 인격적인 만남과 삶의 전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AI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는 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AI를 포스트휴먼이나 신격화된 기계로 이해하기보다 인간과 함께하는 '반려 기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은 AI를 개발하는 인간 역시 죄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며, 창조주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AI 역시 한계를 가진 기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선제적인 규제와 사회적 협력을 통해 AI가 인류 공동체의 선한 목적을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AI는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 아닌 인간성을 돌아보게 하는 도구
제4회 한국기독교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AI와 기술시대의 영성'을 주제로 AI와 인간 의식, 인간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윤철호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는 AI와 인간 의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AI는 인간과 동등한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인간 의식을 대체하거나 동일시되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신학적·도덕적·영적 능력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AI를 유용한 도구로 적극 활용할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성을 중심에 둔 윤리적 기준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박사는 AI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을 대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본질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AI와의 만남은 인간 의식의 기원과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과학과 철학, 신학이 경쟁이 아닌 상호 보완적 협력을 통해 답할 때 과학기술 시대에도 참된 인간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생성형 AI와 설교, 교회교육… 실천신학적 기준 마련 필요성 제기
한국실천신학회 제100회 학술대회에서는 '알고리즘에 함몰된 시대와 실천신학적 비전'을 주제로 생성형 AI 시대 목회와 설교 사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윤성민 박사(강남대학교)는 AI를 활용한 설교 작성이 지닌 신학적 방법론을 검토하면서, AI에 과도하게 의존한 설교가 가져올 수 있는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인정하면서도 목회자가 넘어서는 안 될 신학적·목회적 경계선을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교육학회도 'AI 시대 기독교 교육의 가치'를 주제로 온라인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하계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AI 시대 교회교육의 방향을 논의했다.
'교회교육을 위한 생성형 AI 활용'을 발표한 안양대학교 남선우 박사는 AI는 교회교육의 목적 자체를 대신할 수 없으며, 교육 설계와 교사 준비를 지원하는 강력한 도구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어디까지나 교회교육의 보조 수단이며, 교회교육의 본질은 여전히 말씀과 기도에 기초한 영적 가르침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깨달음에 있다고 강조했다.
◆ AI 시대 목회와 크리스천의 삶, '비판적 수용'과 '본질의 강화'로 방향 모아
한편, 최근 잇따라 열린 주요 신학학회들의 발표를 종합하면, AI 시대 목회와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공통된 방향은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반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AI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신앙의 본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학자들은 AI가 반복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할수록 목회자는 성도들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기도, 영적 돌봄, 공동체 형성이라는 본래의 사역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영성과 인격적 관계, 공동체적 사랑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도 공통적으로 제시됐다.
이처럼 AI 시대 목회와 크리스천의 삶을 둘러싼 한국 신학계의 논의는 단순한 기술 활용 방안을 넘어, 급변하는 디지털 문명 속에서 교회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질을 다시 확인하고 미래 목회의 방향을 모색하는 신학적 담론으로 확장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교회가 기술과 신앙의 균형점을 어떻게 세워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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