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된장국 냄새를 기억하는가”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1980년대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연탄불이 아직 방구들 속에서 붉은 숨을 쉬던 시절, 골목 끝에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먼저 들리면 아이들은 괜히 방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곤 했다. 어머니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된장국 냄비를 다시 데웠다. 가난했지만 이상하게도 집 안에는 사람 냄새가 있었다. 밥상은 초라해도 서로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절 부모들은 대단한 철학으로 자식을 키운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낫게 살아 가게 해야지” 하는 마음 하나였다. 아버지는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공장 야근을 했고, 어머니는 시장 좌판에서 손이 얼어 터져도 학원비 봉투를 챙겼다. 자신의 청춘은 헐값에 팔아도 자식 미래는 비싸게 사고 싶었던 세대. 어쩌면 그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말하는 ‘마처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 겸 부모 부양을 못받는 처음 세대)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고, 부모는 늙었다.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다. 자식을 위해 평생 계산기를 끄고 살았던 부모 앞에 이제는 ‘노년의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집값 부담… 젊은 날 자식 때문에 포기했던 것들이 늦은 영수증처럼 찾아왔다.

세상은 달라졌다. 요즘 우리는 ‘부모 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부모가 집을 사주었는가, 학벌을 만들어주었는가, 유산을 남길 수 있는가가 부모 평가의 기준처럼 들릴 때가 있다. 심지어 “왜 가난하게 낳았느냐”는 말조차 서슴지 않는 시대다. 부모를 향한 원망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진다.

물론 부모도 완벽하지 않았다. 상처를 준 부모도 있었고 서툰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실패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애썼다. 밤잠을 줄였고, 새 옷 한 벌 포기했으며,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늘 “엄마 배불러”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노년 빈곤과 부양 단절 문제가 더 자주 들린다. 자녀가 있어도 혼자 사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홀로 세상을 떠난 뒤 수개월 지나 발견되는 노인의 사례가 반복된다. 자식은 있지만 관계는 끊어진 것이다. 살아서는 안부 전화 한 통 없었는데, 장례식장에 와서 “좀 더 잘할 걸…” 하며 우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그 눈물은 누구를 위한 눈물일까.

성경은 묻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참 오래된 말씀인데 이상하게도 가장 현대적인 질문 같다. 왜냐하면 부모 공경은 예절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부모 전화는 귀찮은 신앙, 십일조는 철저히 하면서 부모 병원비 앞에서는 계산적인 신앙, 선교는 말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와 형제를 외면하는 신앙이라면 우리는 아직 믿음의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신앙은 행동하지 않으면 병든다. 그렇다면 마처 세대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자녀는 ‘정기적인 사랑’을 습관처럼 배워야 한다. 비싼 선물보다 중요한 것은 전화 한 통이다. “엄마, 오늘 뭐 드셨어?”라는 짧은 질문이 외로운 부모에게는 하루의 햇빛이 된다.

둘째, 사회는 돌봄을 가족 개인에게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요양·간병 부담 완화, 공동체 돌봄 시스템, 세대 통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부모 부양이 죄책감과 경제적 공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녀들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부모를 비용이 아니라 이야기로 바라봐야 한다. 부모는 늙은 존재가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해 청춘을 사용한 사람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 냄새는 아직 기억하면서, 왜 우리는 그 손의 주름은 잊고 살아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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