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홍수 속에서 더 깊어진 고독
2026년 5월 13일, 한국 정부는 하나의 상징적인 결정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1차관을 ‘사회적 고립 전담 차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제 고립은 더 이상 “개인이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고독사와 은둔, 관계 단절을 심각한 사회적 위험으로 보고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고독사 방지’ 중심에서 ‘사회적 고립 예방’ 중심으로 정책 방향도 전환했다. 이는 외로움을 개인의 약함이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사실 우리는 지금, 누구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외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은 손에 있고 메신저는 쉼 없이 울리지만, 정작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친구 숫자는 늘었는데 마음 둘 곳은 사라졌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얕아진 시대다.
특히 팬데믹은 외로움의 얼굴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코로나19 시기 거리두기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간격만 벌린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고립되었고, 청년은 불안 속에 혼자가 되었으며, 아이들은 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재택근무는 편리함을 주었지만 공동체의 온기를 빼앗기도 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우울증, 불안장애, 무기력, 사회적 회피, 은둔형 생활은 어느새 시대의 그림자가 되었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은 그의 저서 <외로움의 습격> 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인가?” 그의 답은 의외다. 외로움은 인간 본성이라기보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이라는 것이다. 산업화, 경쟁 중심 사회, 능력주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공동체는 약화되었고, 사람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진단이다. 그는 특히 청년층의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고립이 외로움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외로움은 두 방향으로 흐른다.
첫째는 부정적 방향의 외로움이다. 이것은 단절과 은둔으로 이어진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깊어질 때 사람은 관계를 끊고 자기 안으로 숨어든다. 심할 경우 사회적 고립, 은둔형 외톨이, 고독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외로움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구들은 만성적 고립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높이고, 면역 기능과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둘째는 긍정적 방향의 외로움, 곧 ‘고독’이다. 고독은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가 창조의 순간을 고독 속에서 맞이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주함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외로움이 상처라면, 고독은 성찰의 방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외로움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세 가지 대처법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작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외로움의 해답은 거창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밥 한번 먹자”는 짧은 전화, 동네 산책 모임, 교회 소그룹, 취미 공동체 같은 ‘약한 연결’이 오히려 사람을 살린다. 고독사는 대개 아무도 찾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은 작은 친절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행동이다.
둘째,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자연 속을 걷는 시간은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외로움이 “나는 혼자다”라는 절망이라면, 고독은 “나는 나와 함께 있다”는 회복이다.
셋째, 종교와 공동체의 역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교회와 종교 공동체는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외로운 영혼을 품는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가 그랬듯, 함께 밥을 먹고 울어주고 기도하는 공동체는 외로움의 백신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신앙 이전에 ‘함께 있음’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세대는 누구보다 연결되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외롭다. 좋아요 숫자는 많아도 진짜 친구는 적다. 화면은 가까워졌지만 마음은 멀어졌다. 그래서 미래 문명의 방향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관계 혁신이어야 한다. AI가 발달할수록 인간적인 온기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어쩌면 정부가 ‘고립 전담 차관’을 만든 것은 하나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이제 외로움은 개인의 감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외로운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인간을 살리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이고, 연결이 아니라 진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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