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쉼을
눈물로 피어난 사명의 길
교목으로 희망의 씨앗을 심다

최선 박사
최선 박사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한 그루의 나무를 품고 살아간다. 그 나무 아래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 있으며, 삶을 지탱해 준 따뜻한 기억이 머물러 있다. 나에게는 충주 용원장로교회 입구에 우뚝 서 있던 플라타너스가 그런 나무이다.

무더운 여름이면 플라타너스는 넓은 가지를 펼쳐 교회 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이 뛰놀았고, 성도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세월이 흘러 풍경이 변했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품었던 믿음과 사랑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1979년, 조준동 목사가 용원교회에 부임했다. 교회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성도들의 믿음은 누구보다 풍성했다. 교회 건축을 위해 여전도회 권사와 집사들은 서울로 올라가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며 헌신했다. 그들의 눈물은 벽돌이 되었고, 기도는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마침내 성도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완공되었고, 충청노회에서는 처음으로 봉고차를 마련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시절, 그 교회에서 자라난 한 소년이 있었다. 조준동 목사의 막내아들 조용철 목사이다. 그의 청년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장갑공장을 운영하며 사업에 뛰어들었고, 한때는 직원들과 함께 더 큰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거래처의 어음 부도에 이어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 밀려들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찾아온 실패는 젊은 청년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실패를 통해 사람을 새롭게 빚으신다.

조 목사는 무너진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회개했고,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교육과 목회의 길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석대학교 교육학과에서 공부하며 서울을 오가는 긴 통학 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사회복지와 상담, 교육 분야를 배우며 자신을 준비했다. 그의 성실함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다.

이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교육전도사와 부목사로 사역했다. 사례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불평보다 기도를 선택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오래된 꿈을 이루어 주셨다.

현재 그는 영신여고에서 교목으로 사역하며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교실과 예배당에서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동시에 상계평강교회에서는 목회사역을 감당하며 영혼을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조용철 목사와 사모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삶의 풍파를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안과 따뜻함이 그 미소 속에 담겨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희망을 심어 주는 교사로, 성도들에게는 사랑으로 섬기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가 사역하는 영신여고는 '믿음으로 사는 여성'이라는 교훈 아래 예배와 성경수업, 세례교육 등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그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결코 늦지 않다. 언젠가 학생들이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미션스쿨에서 들었던 말씀과 사랑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것이 교육선교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도 플라타너스와 닮아 있다. 당장은 그늘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서게 되는 날 비로소 그 나무를 기억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사람들과 교회, 그리고 실패와 눈물의 시간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쉼과 희망이 되는 그늘이 된다.

조용철 목사의 삶은 우리에게 말해 준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며, 소명은 특별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이름 없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교목들과 목회자들이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그들의 헌신과 기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때에 그 씨앗을 싹 틔우시고, 마침내 풍성한 열매로 맺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에서 시작된 작은 믿음은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의 소명이 되었고, 그 소명은 다시 수많은 다음 세대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대를 이어 믿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신다.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길에 있었던 기쁨과 눈물, 성공과 실패의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된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씨를 뿌리는 모든 사역자들의 걸음 위에 주님의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믿음의 씨앗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최선(崔宣) 박사
방송·신문 칼럼니스트
SBCM KOREA 대표
OCU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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