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어거스틴, 캘빈, 루터, 존 오웬,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J. I. 팩커, R. C. 스프로울, 로이드 존스 등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 모두가 성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그들이 남긴 짧은 문장들은 정말 의미심장하고 소중한 진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보배로운 명문장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중 R. C. 스프로울이 남긴 한 문장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Salvation is based on free will, the free will of a Sovereign God.” 우리말로는 다음과 같다. “구원은 자유의지에 근거한다. 다만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자유의지’이다.”

이 말은 칼빈주의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이 문장의 의미를 쉽게 설명해 보자. 구원의 최종 원인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께서 자유롭고 은혜롭게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신 뜻에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으시며, 자신의 완전한 뜻과 기쁨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따라서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결단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기초한다. 이 한 문장은 “구원의 주도권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개혁주의 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명언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뿐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한 구절들이 있긴 하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같은 무게중심으로 놓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마치 이 둘을 양날의 검이나 양 수레의 바퀴처럼 주장하는 이론이나 교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성경 전체의 의도나 흐름과 배치되는 위험한 생각임을 놓쳐선 안 된다. 성경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란 것이 구원과 관련해서는 ‘제한된 자유의지’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아이는 하루 종일 자유의지로 행동한다. 엄마가 아이의 모든 행동을 주관하거나 제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칼과 같은 위험한 도구를 만지려거나 계단 밑으로 떨어지려 하면 얼른 막아준다. 이것을 ‘제한된 자유의지’라고 한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면 된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하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3-5).

엡 1:11의 내용도 마저 소개해 보자.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그렇다.

롬 9:11도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그분의 자유의지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의지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무 역할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를 파괴하지 않고 새롭게 하여,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구원의 응답은 인간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조차 하나님의 은혜가 가능하게 한 선물이다. 그 은혜가 없이 인간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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