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최근 베네수엘라를 덮친 대형 재난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로 구조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은 침묵으로 바뀌었다. 재난은 한순간에 도시를 무너뜨렸지만,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 폐허이다.

우리는 재난을 사망자 수와 경제적 손실로 평가한다. 그러나 재난의 가장 깊은 상처는 통계에 기록되지 않는다.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 "왜 나는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우리는 '생존자'라고 부른다.

심리학은 이를 '생존자 죄책감'이라 설명한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감사가 아니라 평생의 짐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수 있지만, 마음속 상실감과 외상은 오랫동안 사람을 붙잡는다. 재난은 끝났지만 생존자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이러한 아픔을 잘 알고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이산가족의 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항공기 사고와 산업재해,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 가족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생존자의 비애를 안고 살아간다. 시간이 흐른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 갈 뿐이다.

원래 '생존자'라는 말은 자살로 가족을 잃은 '자살 생존자', 국가 위기 시 정부 기능을 이어가기 위한 '지정생존자'라는 개념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쟁과 대형 사고, 자연재난을 겪은 유가족과 이재민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평생의 짐이 되는 사람들이다.

재난은 자연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부실한 내진 설계, 안전 규정 미준수, 감독 소홀, 정치적 무능과 부패는 자연재해를 인재(人災)로 키운다. 안전보다 비용을 먼저 생각한 사회는 결국 더 큰 대가를 치른다. 재난은 운명이 아니라 준비의 수준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재난 이후에는 복구만이 아니라 예방이 중요하다. 철저한 안전 점검과 반복적인 재난 훈련, 엄격한 법 집행은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일본이 지진을 대비해 오랜 시간 안전 문화를 만들어 온 것처럼, 우리도 재난을 일상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본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를 이루었고, 민주화를 통해 자유를 지켜 냈으며, IMF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시민의식과 공동체 정신은 세계적인 모범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위기를 이겨 내는 힘이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대형 재난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 연대와 과학기술의 협력, 공정한 구호와 책임 있는 정책이 함께할 때 비로소 인류는 같은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재난은 국경을 모르지만, 연대 역시 국경을 넘어설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인간다워진다."는 뜻을 여러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여 주었다.

재난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사회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고, 기억을 유산으로 남기는 사회는 더 안전한 미래를 만든다. 생존자의 눈물을 잊지 않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가 같은 슬픔을 겪지 않도록 오늘의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문명의 수준은 높은 빌딩의 개수가 아니라 가장 상처 입은 사람을 끝까지 품어 내는 공동체의 품격으로 결정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재우 #정재우원장 #세인트하우스평택 #베네수엘라지진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