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될 때가 있다. 재난 영화 《Greenland》가 그렇다. 1편은 거대한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가운데 한 가족이 생존 벙커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인류 문명이 무너지는 순간,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2편 《Greenland: Migration》은 살아남은 자들이 폐허가 된 지구 위에서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이동하며, 다시 문명을 세울 수 있는가를 묻는다.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 그 두 질문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런데 문득 묻게 된다. 저 이야기는 정말 영화 속 상상일 뿐인가.
현실을 둘러보면 이미 영화는 시작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고, 수백만 명의 삶은 무너졌다. 마리우폴과 바흐무트의 무너진 건물들을 보면 《Greenland》 속 혜성이 떨어진 도시와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 속 재난은 자연이었지만 현실의 재난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쟁은 단지 총성과 폭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식량을 무너뜨리고, 난민을 만들고, 세계 경제를 흔든다. 오늘 한 나라의 전쟁은 내일 다른 나라의 식탁을 흔든다. 세계는 그렇게 이미 연결된 운명 공동체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리면 석유 공급이 멈추고, 세계 경제는 곧바로 타격을 입는다. 자원은 곧 생존이고, 생존은 곧 문명이다. 《Greenland 2》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식량과 물을 찾아 이동하듯, 현실에서도 자원이 부족해지면 인간은 이동하고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도 경고한다.
최근 베네수엘라 대지진은 단 39초 만에 도시를 무너뜨렸다. 병원과 도로와 집들이 한순간에 붕괴되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평범했던 삶은 폐허가 되었다. 이것은 영화보다 더 냉혹한 현실이다. 인간은 달에 가고 인공지능을 만들었지만, 대지 한 번 흔들리는 것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하다.
더 두려운 것은 이런 위기들이 따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식량 위기를 부르고, 식량 위기는 난민을 만들고, 난민은 국경 갈등을 부른다. 기후변화는 가뭄과 홍수를 만들고, 그것은 다시 빈곤과 폭력을 낳는다. 지진은 도시를 무너뜨리고, 그 뒤에 전염병과 혼란이 찾아온다. 《Greenland》의 혜성은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현실은 여러 개의 충돌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우리는 자주 문명이 견고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명은 생각보다 얇다. 전기, 물, 식량, 질서, 신뢰. 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끊어지면 거대한 도시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진짜 문명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지금 인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핵무기를 줄일 것인가, 더 늘릴 것인가. 탄소를 줄일 것인가, 더 태울 것인가. 국경을 닫을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기술을 인간을 살리는 데 쓸 것인가, 더 빨리 죽이는 데 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Greenland》의 마지막 장면에서 벙커 문이 열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폐허가 된 지구 위로 나온다. 하늘은 맑지만, 문명은 사라져 있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왜 준비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영화의 질문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질문이다.
경고는 언제나 재난보다 먼저 온다. 문제는 인간이 늘 그 경고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해서 말한다. 오만은 붕괴를 부르고, 탐욕은 전쟁을 부르고, 무관심은 재난을 키운다.
지금 세계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전쟁으로.
지진으로.
기후로.
폐허가 된 도시로.
준비하라.
이전 방식대로 살면, 미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곧 닥쳐올 현실이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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