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망국의 교훈, 오늘의 외교가 되새겨야 할 역사
제사장적 외교관으로, 자유 대한민국의 내일을 열길

 

창덕궁 대조전의 동쪽 부속건물인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경술국치를 결정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장소다.
창덕궁 대조전의 동쪽 부속건물인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경술국치를 결정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장소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과 인정문을 거쳐 선평문으로 들어서면 왕비 처소인 대조전이 나타난다. 흥복헌은 대조전에 이어진 정면 3칸의 작은 부속건물이다.

 

1907년 7월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강제 폐위 유폐된 고종에 이어 황제로 즉위한 순종은 이제 11월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왕비 처소에서 지냈다.

1926년 4월 순종이 숨을 거둔 곳도 흥복헌이었다.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은 대여섯 걸음만 걸으면 끝이 닿는 작은 방이었다. 현대 건물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 재건한 것이다.

창덕궁 관리팀장은 매년 30만 명 이상의 일본인 관광객이 창덕궁을 찾지만, 이것이 병합조약을 결정한 어전회의가 열린 곳이라고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전회의가 열렸다고 하면 마치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병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어전회의와 병합조약 체결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미 1909년 7월 6일 적당한 시기에 한국의 병합을 단행한다는 내용의 한국병합에 관한 건을 내각 각의에서 최종 결정했다. 일본은 주변 열강들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을 철저하게 진행해 왔다. 일본은 1910년 5월 영국 대사 맥도널드를 통해서 한국병합 방침을 영국에 알렸다.

일본으로서는 러시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본이 자국의 동아시아 영토를 위협한다고 판단한 러시아는 1909년 중반 미국과의 제휴를 적극 검토하고 있었다.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는 만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던 미국에 동청철도를 매각하여 두 나라의 연결고리로 삼으려고 했다.

그해 10월 6일 이토가 코코프체프와 회담을 위해서 하얼빈을 방문한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제휴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러시아에 제2차 러·일 협약을 제안했다.

1910년 7월 4일 맺은 제2차 러·일 협약은 만주에서 양국의 특수 지위를 상호 승인하고 서로의 이익을 방위하는 공동 조치를 함께 강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를 남북으로 나누어 이권을 서로 지지하고, 일본은 러시아의 외몽골 지역에서 특수 이익을 존중하며, 러시아는 한국에서 일본의 자유행동을 인정했다는 1907년 제1차 러·일 협약보다 더욱 진전한 것이었다.

결국 제2차 러·일 협약은 일본이 한국병합에 대한 러시아의 승인을 전제로 만주 문제를 합의한 것이었다. 즉 러시아의 만주 이권을 지지해서 일본은 한국병합 승인을 얻어낸 것이다. 당시 어떤 열강도 이러한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열강을 자기편으로 만든 일본은 1910년 8월 21일 영국과 러시아에 한국 병합조약 체결을 미리 통지하고, 한국과 조약을 체결한 프랑스, 독일,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 주재하는 일본 대사 및 공사에게 한일병합을 해당국 정부에 알리도록 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한일병합을 원래 예견하고 있던 것’이라고 했고 독일 외무대신 케테를렌 베히터는 ‘진작에 예견했던 일로 놀랄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식민지 백성이 된 한국인들은 망국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만 돌고 있었을 뿐이었고, 통감부의 엄중한 보도 통제로 신문 기자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일 강제병합은 8월 26일 야마가타 부통감의 기자회견에서 처음 알려졌다.

1910년 8월 29일 병합늑약 공표 후 별다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인 두 사람만 붙어 있어도 일본 헌병과 순사가 심문하는 분위기에서 한국인은 숨을 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범희 목사
이범희 목사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재외 공관장들의 공석이 수십 개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국제사회의 치열한 외교전에서 한시도 외교 진지의 수장을 이탈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국인의 특성이며 장점인 특유의 겸손과 정직과 검소한 민족 성품으로 지구촌 국제사회의 협력과 자유를 견인하는 제사장적 외교관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자유대한민국의 번영과 안정과 다음 세대를 보장하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한말의 무사안일한 외교 정책이 얼마나 미련하고 무지한 일이었고, 일본 정객들의 열강을 향한 정성과 치밀한 노력이 무엇을 얻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의 국제관계를 한국의 외교력이 견인해서 안전하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것을 믿는다.

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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