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진화론 서술을 학문·교육학적으로 검증해 온 (사)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이하 교진추)가 13일 서울역 대회의실에서 ‘제4회 교과서진화론개정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2022 개정 『통합과학 1·2』 교과서의 진화론 기술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심포지엄의 대주제는 ‘진화론·교과서·세계관 – 2022 개정 「통합과학 1·2」 교과서의 문제점과 대안’이었다.
이날 행사는 한윤봉 학술위원장(전 전북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광원 회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이 회장은 “교과서는 학생들의 사고 체계와 세계관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도구”라며 “진화론을 하나의 이념·세계관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과 해석의 다양성을 갖춘 균형 잡힌 과학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통합과학 1·2에서 진화 관련 서술과 용어가 대거 재편된 것은 단순한 분량 조정이 아니라 과학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라며 “이 변화를 신교육사회학적 관점과 과학교육 철학의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발제에서 김오현 연구소장과 한윤봉 학술위원장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의한 「통합과학 1·2」 진화론 내용의 변화 분석’을 통해, 2009 개정 ‘융합과학’부터 2015·2022 개정 통합과학에 이르기까지 교과서 속 진화 서술 구조의 변천을 추적했다.
발제에 따르면, 2009 개정 교과서는 빅뱅–지구의 형성–생명의 출현–진화로 이어지는 ‘빅 히스토리’ 서사를 통해 진화를 우주·지구·생명을 관통하는 세계관의 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2015 개정 통합과학부터는 ‘무작위 돌연변이’, ‘자연선택’, ‘공통조상’ 등 핵심 용어의 비중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22 개정 『통합과학 1·2』에서는 해당 용어 상당수가 삭제·축소되거나 ‘변화’, ‘적응’, ‘상호작용’, ‘다양성’ 등 보다 중립적인 표현으로 대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소장은 “시조새, 말의 진화 계통도, 후추나방, 핀치새 부리, 밀러의 화학적 진화 실험과 같은 ‘진화 아이콘’이 통합과학 1·2에서 사실상 사라졌거나 크게 축약됐다”며 “지질시대·표준화석·절대 연대 표기 역시 완화되거나 삭제되면서, 장구한 시간에 걸친 점진적 진화 서사 대신 ‘오랜 시간의 변화’, ‘환경과 시스템의 상호작용’이라는 보다 느슨한 시간 개념이 강조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2009–2015년 교과서에서 진화는 ‘증명된 사실’ 혹은 ‘절대 이론’처럼 제시된 반면, 2022 개정에서는 성취기준상 “탐구 가능한 주제” 수준으로 위상이 낮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는 진화론 교육의 축소라기보다, 신다윈주의적 서사가 갖는 논리적·경험적 한계가 교육과정 수준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과학교육이 단일 패러다임 주입에서, 비판적 탐구와 다원적 해석을 허용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발제에서 양승원 박사(교진추 학술위원, 제네시스연구소 소장)는 ‘다양성과 형질 변화는 진화의 증거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통합과학 2』(5종)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양 박사는 “현행 통합과학 2 교과서는 핀치새 부리 변화, 도마뱀 형태 변화, 항생제 내성, 품종 개량 등을 ‘진화의 대표적 증거’로 제시하지만, 이 사례들은 대부분 새로운 유전정보의 창출이 아니라 기존 정보의 재배열·발현 조절·기능 소실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집단 내 형질 분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이를 곧바로 종의 기원이나 대진화의 증거로 일반화하는 것은 관찰과 해석의 경계를 흐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다섯 개 출판사 교과서가 공통적으로 △ 화석·지층 연구를 ‘진화과정 파악’의 직접 증거로 단정하고 △대멸종 이후 생물 다양성 증가를 ‘새로운 종의 진화’로 서술하며 △자연선택을 ‘종 분화의 원리’로, 적응을 ‘곧 진화’로 등식화하고 △변이와 형질 변화를 ‘신종 출현’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양 박사는 “이 같은 서술은 사실상의 ‘진화론적 해석’을 마치 관찰된 사실인 것처럼 학생에게 전달하는 교육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교과서에서는 ‘~로 해석할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는~’과 같이 관찰과 이론을 분명히 구분하고, 화석·대멸종·다양성에 대한 상이한 해석 가능성도 함께 소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과학의 본질은 잠정성과 개방성, 비판성에 있는데, 현재 교과서는 이 부분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세 번째 발제에서 류현모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교진추 학술위 부위원장)는 ‘후성유전적으로 획득된 형질은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주제로, 최근 교과와 해외 교육현장에서 확산되고 있는 후성유전(epigenetics) 담론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류 교수는 먼저 유성생식 생물에서 ‘같은 종’의 기준을 △염색체 수의 동일성 △염색체 상 유전자 배열(synteny)의 보존 △감수분열 과정에서의 균등 교차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의 높은 유사성 등으로 정리하며, “이 구조적 안정성이 무너지면 발달 질환·생식 불능·임신 초기 소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규모 염색체 재배열이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가정은 유전체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전(genetics)은 DNA 염기서열 자체가 바뀌는 것, 후성유전은 염기서열은 그대로 둔 채 DNA 메틸화·히스톤 수식·RNA 간섭 등으로 발현만 조절하는 것”이라며 “후성유전적 표지는 대부분 생식세포 형성 과정에서 리셋되므로 세대 간 안정적인 정보 축적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후추나방 색 변화, 다윈 핀치 부리 차이, 아구티 마우스, 겸상적혈구 빈혈과 말라리아 저항성, 항생제 내성 등 이른바 ‘자연선택 사례’ 상당수가 종 내부의 후성유전·조절 변화로도 설명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례들은 모두 같은 종 안에서의 다양성이지, 종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진화가 아니다”며 “후성유전을 진화의 새로운 메커니즘인 것처럼 교과서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과학적·논리적으로 무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후성유전은 생명체가 환경에 정교하게 ‘적응’하도록 설계된 조절 장치이지, 생명체를 ‘다른 종’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오히려 후성유전 연구가 발전할수록, 생명체가 고도로 조직된 정보 시스템이라는 사실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발제에서 김성현 교수(건국대 시스템생명공학과, 교진추 학술위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각종 가설의 평가 및 비판’을 통해, 2022 개정 과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화학적 진화·RNA 세계·LUCA 등의 가설을 검토했다.
김 교수는 먼저 파스퇴르 이후 확립된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온다”는 생명속생설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현재 교과서에 소개되는 코아세르베이트, 마이크로스피어, 리포좀 등은 콜로이드 응집체 혹은 인지질 구조체에 불과하며, 자기복제·정보저장·대사·세포분열이 갖춰진 ‘원시세포’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한 최근 교과에 등장하기 시작한 LUCA(최종 공통조상) 개념에 대해서도 “현존 생명체의 공통성을 역산한 가설적 존재에 불과하며, LUCA 자체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한, 생명 기원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지적했다. 남세균(시안박테리아)의 광합성을 통해 환원성 원시 대기가 산화성 대기로 ‘급격히’ 전환되었다는 통상적 서술에 대해서도, “대기 전환의 속도·조건·중간 단계가 실험적으로나 지질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특히 RNA 세계 가설의 한계를 집중 지적했다. 그는 “RNA가 동시에 정보 저장과 촉매 기능을 수행하고, 스스로 복제되며, 안정성을 유지하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실험실 조건에서도 이를 재현하기 매우 어렵다”며 “천문학적 시간과 우연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기는 가설은 과학적으로도 설득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의 생명 기원 서술은 ‘진화’를 전제한 채, 무생명체에서 생명체로의 연결 고리를 화학적 진화로 메우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과학이 실제로 확인한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라는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다. 오랜 시간과 우연을 가정한다고 해서, 고도로 정교한 정보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지적설계’ 관점을 소개하며 “정보와 목적성을 가진 체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주장이 아니라 정보이론·시스템생물학 관점에서 과학적으로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발제 이후에는 한윤봉 위원장의 진행으로 종합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2009~2022년 교육과정 개정 흐름 속에서 진화 서술이 축소·재편된 사실에 주목하면서, 향후 교과서 개발 방향과 대안 교육 콘텐츠 필요성을 논의했다.
한편, 교진추는 그동안 시조새·말의 진화 계열·화학적 진화·후추나방 등 교과서 속 진화론 사례에 대해 14차례에 걸친 개정 청원을 제출해 왔으며, 자체 학술지 STR Journal 발간, ‘데오 프로젝트’ 차세대 리더 교육, 유튜브 숏츠 시리즈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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