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 홍순철)가 13일 오후 스페이스쉐어 서울역에서 ‘28주년 세미나 및 제4회 SUFL 홈커밍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생명윤리 위기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낙태와 조력자살 법제화 논쟁이 다시 불붙는 상황 속에서 이번 세미나는 생명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다각도로 진단하고, 이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는 인사말, 축사, 1부, 2부로 순으로 진행됐으며 홍순철 소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홍 소장은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생명윤리 현실은 ‘심각한 위기 국면’에 있다. 낙태와 자살률 증가, 생명을 지극히 가볍게 소비하는 사회 분위기가 짧은 시간 안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연구소는 지난 28년 동안 생명 보호를 위해 연구·교육·대안을 모색해 왔다. 오늘의 논의 역시 ‘생명이 누구의 것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조배숙 의원(국민의힘)이 축사를 전했다. 조 의원은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지난 수십 년간 생명 관련 현안을 꾸준히 연구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 조력자살·안락사·태아와 임신부 보호 문제 등이 향후 입법 과정에서 더욱 신중하고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조해진 전 의원(SUFL 고문)이 축사를 전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사회 병리 현상들이 있으며 생명 가치가 뒤흔들리는 현실이 국가적 위기라고 본다. 생명운동을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하나의 사명’이다. 이에 우리 사회는 생명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1부 학술 발표에서 신효성 박사(명지대학교 법부행정학과 객원교수)가 ‘대한민국 조력자살 법제화 논의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신 박사는 “존엄사는 말기 환자의 정상적인 의사에 따라 생명유지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조력자살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명을 끝내는 행위이며, 안락사는 제3자가 환자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종료하는 행위이다. 국 사회에서 논의되는 ‘조력존엄사법’이 이러한 개념들과 뒤섞여 있어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하며, 법률적 용어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법제화가 진행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네덜란드 사례를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네덜란드는 제도 도입 당시 엄격한 제한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행 과정에서 사후 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적용 대상이 점점 확대되었다고 분석했다. 정신질환·치매 환자에게까지 허용 범위가 확장되었을 뿐 아니라, 2023년에는 12세 미만 아동에게까지 안락사가 허용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례가 ‘처음 의도한 선의와 다른 방향으로 법이 확대 적용될 수 있다’는 위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조력존엄사법이 논의 중이며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말기 환자 여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존재, 환자의 자발적 의사 등 여러 요건을 심사위원회가 판단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 누가 이 요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모호한 부분이 많다. 법안이 사후 통제 방식에 의존한다는 점은 위험 요소이며 네덜란드 사례처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시행된 사례들’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조력자살 법제화는 생명윤리·의학·법률 전 분야에 걸친 중대한 변화이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더 촘촘한 법적 안전장치 없이 추진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상원 교수(전 총신대 신학대학원장), 최가은 간호사(안암고대병원)가 논평자로 나섰다.
이상원 교수는 “조력존엄사·안락사·존엄사라는 용어들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언어적 구분이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 있으며, 결국 의사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종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하나의 범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최가은 간호사는 “한국의 의과대학에서 말기 환자 돌봄 교육이 평균 10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임종 돌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의료진이 늘어날 경우, 안락사를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영국은 완화의료 체계가 탄탄하게 자리 잡지 않은 국가이다. 따라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저는 법·제도 논의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교육·시설·인력 확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진 2부 순서에서 장지영 교수(SUFL 운영위원장)가 인사말을 전했다. 장 교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6년 동안 입법 공백이 이어져 왔다. 최근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낙태를 허용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취약계층과 청소년에게 낙태가 ‘현실적 선택지’로 강요되는 흐름 속에서 낙태 문제는 단지 개인의 선택이나 권리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생명 가치 회복을 위한 교육이 한국 사회에서 시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봉화 대표(행동하는프로라이프, 태아와여성보호국민연합)가 축사를 전했다. 그는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지난 28년간 생명존중의 가치를 지켜온 데 깊은 감사를 전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태아 생명 경시, 자살 증가, 개인 선택을 앞세운 생명 인식의 약화 등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엇이 인간인가, 언제부터 생명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회복해야 한다. 생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동체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다”며 “생명운동이 외롭고 어렵더라도 이 길을 묵묵히 걸어온 연구소와 활동가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윤리의 기둥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용기 있게 생명 가치를 지켜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홍순철 교수(고대의대 산부인과)가 ‘태아, 임산부 관점의 약물 낙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홍 교수는 “약물 낙태는 단순히 ‘비수술적이고 편리한 방식’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태아와 임산부 모두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의료적 행위다. 미소프로스톨은 원래 위궤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임신 초기 자궁수축을 유도하는 부작용이 알려지면서 낙태 약물로 오용되었다. 해당 약물은 상업적 유통과 온라인 판매가 확산되며 안전한 의료체계 밖에서 약물 사용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태아 기형, 자궁 파열과 같은 중대한 산모 합병증, 약물 복용 후 높은 비율의 추가 수술 필요성 등 다양한 의료적 위험 사례들이 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낙태’일 뿐 결코 안전한 방식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물 낙태 논의가 태아 생명권, 임산부의 신체·생식 건강, 의료윤리, 상업화 문제 등 복합적인 생명윤리적 사안을 내포하고 있다. 약물 낙태를 난임 치료제처럼 소비하는 구조, 의료인의 양심에 반하는 시술 강요 문제, 원격진료·약국 판매 등 규제 완화가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낙태의 편의성 확대’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고 임산부가 안전하게 지원받을 수 있는 의료 및 정책 환경을 갖추는 일이다. 약물 낙태는 태아뿐 아니라 임산부의 생명과 미래까지 위협하는 문제다. 생명 보호 중심의 사회적 기준이 반드시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장지영 교수가 “약물 낙태, 안전과 권리로 포장된 ‘폭력’”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장 교수는 “약물 낙태가 ‘안전한 선택’ 또는 ‘여성의 권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영국 NHS 자료에 따르면 약물 낙태 후 상당수 여성이 응급실·입원 치료·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합병증을 경험했음에도, 정부 공식 보고는 극히 적은 수의 부작용만을 기록해 ‘안전성 통계’의 신뢰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약물 낙태는 덜 위험한 방식이 아니라 ‘덜 보이는 위험’일 뿐이며, 다양한 국제 데이터가 약물의 실질적 위험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기관과 일부 정책 결정 과정이 ‘선택권’과 ‘재생산권’이라는 언어를 앞세워, 낙태 의료화를 확산하고 필수의약품 지정·보험 적용 등 낙태 접근성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를 공공의료 체계에서 제공하고, 용어를 ‘임신중지’로 변경하도록 권고한 결정은 여성 인권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에게 더 큰 위험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이 여성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건강권 모두를 약화시키는 이중적 폭력 구조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생명 보호 중심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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