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로리 목사.
그렉 로리 목사. ©하비스트 미니스트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처한 극심한 폐쇄 상황에서 저는 새를 보는 기쁨을 찾았습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제 집 뒷마당에는 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방문합니다.

국가적 또는 개인적 위기를 만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새와 꽃으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25~34)

당신의 근심을 멈춰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은 옷이나 음식과 같은 일상의 필요에 대해 생각하거나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성경의 여러 곳에는 우리의 근면과 저축, 미래에 대한 설계와 지혜를 구하라고 당부합니다. 또 생산적이며 책임 있는 삶을 살도록 강하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마음 속의 걱정을 정당화하거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걱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걱정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걱정은 그분에 대한 신뢰의 부족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근심과 걱정은 우리가 그가 누구인지 또는 그를 정말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걱정은 우리 삶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에게 상처를 줍니다.

근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사고"는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하기 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삶에서 이것과 씨름했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는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십대 청소년기에 고향 땅 이스라엘에서 납치되어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왕들을 섬겼는데요. 다리우스 왕이 통치하는 동안, 유대인이었던 다니엘이 제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자 페르시아 관료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체포하고 굶주린 사자 굴에 던질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리우스 왕은 자신이 정한 법으로 인해 충실한 신하를 구할 수 없었고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걱정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길들인 사자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아기처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은 쉬고 있었고, 쉬어야 할 사람은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시편 127:2)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가 왜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십니다.

새들도 걱정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근심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6장26 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자연에서 증거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지구에 살았던 수십억의 새들 중 하나도 당신과 나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없습니다. 새들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 없고, 영생에 대한 기대도 없으며, 창조주를 대면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 노래합니다.

새들은 먹이를 생산하거나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매일 식탁을 차려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새들은 곤충과 풀을 먹고 일부는 맥도날드 주차장에 감자 튀김을 맛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느냐? 너희의 근심과 걱정이 생명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모든 새들을 생각하시고 음식을 제공한다면 그가 너희의 필요 역시 채우실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꽃들도 걱정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근심해야 합니까?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태복음 6:28~29)

예수님께서는 집 밖에서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늘과 구름, 포도밭과 과일 나무, 바람과 비, 암탉과 병아리, 물고기와 개울, 일출과 일몰, 바위와 무지개 등으로 영적 진리를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자연은 그분의 칠판이었습니다. 누가 창조주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예수님께서는 주변의 겸손한 야생화를 가리키며 '호화로운 궁전에서 왕실 예복을 입은 솔로몬 조차도 갈릴리의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외모와 겉모습에 집착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미망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옷장에 3천여 켤레가 넘는 신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멋지게 보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잘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정도로 외부적인 것들에 몰두하게 되면 선을 넘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은 빨리 시들게 됩니다. 백합과 같이 일부 꽃은 단 하루 동안 피었다가 빨리 시들어버립니다. 우리의 몸 또한 "임시 주택"이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몸을 "천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지극히 평범한 작은 들꽃도 아름답게 입히기 위해 돌보시듯 당신의 아들과 딸들을 반드시 돌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은 생명을 연장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걱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걱정이 여러분의 생명을 한 순간이라도 더할 수 있습니까?"라고 지적하십니다. 물론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삶의 길이를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시간을 연장할 수는 없습니다. 삶의 길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경은 다윗 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사도행전 13:36)

이 땅에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삶입니다. 얼마나 오래 섬길 수 있는지는 그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매일 매일의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쓰실 수 있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시편 90편 9절에서 모세는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짧든 길든 (단편이든 소설이든) 모든 페이지는 그분의 것입니다.

30절에서 예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믿음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너희의 믿음이 작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약하거나 "작은 믿음"으로 인해 걱정하고 불안해합니다. 언제나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두려워하거나, 패배합니다. 상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서 지배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믿지만, 매일의 필요와 상황 가운데서는 예수님을 믿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시험이나 도전이 닥칠 때, 상황에 쉽게 휩싸여 버리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테스트입니다. 한 국가에 대한 시험일 수 있고 전세계를 향한 테스트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시험일 것입니다.

정부의 '대피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악몽입니다. 극도의 두려움에 빠진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긴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시편 27편 5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그렉 로리 목사(하비스트 미니스트리)

* 미주 기독일보는 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가 출간한 서적 ‘어라이즈 투게더’(Arise together)를 18회에 걸쳐 번역 게재합니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현지 복음주의 목회자들의 교회 본질 회복에 대한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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