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목회 시절 처음으로 맞은 안식년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던 일이 아직도 선명하다. 돌아오는 길엔 직항이 없어서 홍콩을 경유해야 했다. 하루 묵는 김에 홍콩 중심가의 YMCA 호텔에 머물렀고, 다음날 아침 서울의 남산과 비슷한 언덕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았다. 초고층 빌딩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고, 바다와 항구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펼쳐진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홍콩의 자부심처럼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30년 전이었으니 그러한 인상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 다시 홍콩을 찾은 적이 있었다. 선교 일정 때문이었다. 현지 선교사와 함께 교회와 기관들을 방문하며 대중교통으로 도시 곳곳을 지나다녔다. 번화한 거리도 보았고,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빈민가도 보았다. 도심 외곽의 평범한 주거지도 지나갔다. 그 모든 모습이 ‘국제 도시답다’는 인상을 주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도시는 활기가 있었다. 자유롭고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홍콩은 여러 변화를 겪었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소식들은 주로 뉴스로만 들었다. 민주화 시위, 정부의 강압적 조치에 대한 우려, 그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시민들. 한때 빛나는 국제 도시로 기억했던 홍콩이 점점 긴장과 불안의 도시로 변해가는 듯했다.
그리고 이번 대형 화재 소식을 듣는 순간, 필자의 마음 한켠에서는 오래전 여행 중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홍콩의 모습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도시의 시스템과 정부의 책임, 주민 안전의 구조적 취약성까지 드러낸 대참사였기 때문이었다.
2025년 11월 26일, 홍콩 신계 타이포(Tai Po) 지역의 Wang Fuk Court 단지에서 발생한 화재는 외벽 보수 공사 중 설치된 대나무 비계와 공사망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여러 동으로 번졌다. 32층 높이의 주거지가 불덩이로 변했다. 최소 156명 사망, 100명 이상 실종. 진화까지 40시간이 넘게 걸린, 최근 수십 년 홍콩에서 가장 참혹한 주거 화재였다.
문제의 핵심은 발화만이 아니었다. 난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저품질 자재의 사용, 작동하지 않은 화재경보와 연기 감지기, 주민들의 사전 민원이 묵살된 정황까지 드러났다. 기술적 실패와 제도적 실패가 동시에 폭발한 것이었다.
홍콩의 주요 언론들은 이 사건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SCMP는 분노보다 먼저 “정확한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The Standard는 취약계층의 안전 문제를, HKFP는 ‘주민이 제기한 경고가 무시되었다’는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해외 언론들도 규제의 허점, 정부 대응의 투명성, 정치적 맥락까지 언급하며 홍콩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필자는 이 모든 내용을 접하며 단지 ‘홍콩이 안타깝다’는 마음을 넘어 모종의 섬뜩한 친숙함을 느꼈다. 왜일까? 그것은 이 비극의 여러 장면이,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품질 자재 사용, 관리·감독의 느슨함, 경보 장치의 미작동, 위험을 알리는 주민 목소리의 묵살, 사고 뒤에야 시작되는 뒤늦은 단속, 책임 공방…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되풀이되어온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대구 지하철, 이태원 참사, 수많은 산업재해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경고가 있었던 비극”을 경험했었다. 어떤 사고는 시작 이전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유지된 시스템은 결국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
그래서 이번 홍콩의 참사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의 위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며, 그 균열을 외면하는 순간 한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홍콩의 비통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비통함이 곧 우리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얼굴을 외면하는 순간, 미래의 누군가가 또 다른 참사를 “타산지석”이라 부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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