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리포지터리』 기술의 오류와 제 문제점

3-1. 대표적인 사전에서 발견되는 『리포지터리』 기술의 문제

기독교 관련 역사물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세부 연구에 앞서 참고하는 서적으로는 기독교문사 발행 『기독교대백과사전』과 국학중앙연구원 발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리포지터리』에 대한 명확한 기술이 되어있지 않았다.

가. 기독교문사 발행 『기독교대백과사전』 자료

기독교대백과사전에서는 『리포지터리』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창간 이후 1892년 12월 일시 휴간되었다가 3년 후인 1895년에 이르러 아펜젤러(H. G. Appenzeller; 亞扁薛羅)와 헐버트(H. B. Hulbert; 訖法) 등에 의해 다시 발행되었으며 1899년 6월 통권 50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고 〈The Korea Review〉로 연결되었다. 한국에 관한 선교사들의 연구논문이 수록되어 있어 한국학 연구지로서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6)

여기서도 1899년 2월 초까지 휴간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고, 통권 50호라는 수는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나. 한국한중앙연구원 발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7)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자서비스)에서는 『리포지터리』를 2차례 설명한다. 언론·방송 카테고리에서는 『리포지터리』를 “미국 감리회 선교사 올링거가 선교 활동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1892년에 창간한 신문·영자신문”이라고 정의했고, 개신교 카테고리에서는 “1892년 미국의 북감리회 선교사 부부가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잡지, 개신교월간잡지”로 정의했다. 여기서 전자의 ‘신문·영자신문’이라고 한 것과 후자의 ‘개신교월간잡지’로 한정한 것은 이 사전 집필자와 편찬위원회의 주관적 해석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사전은 앞의 설명에서 신문·영자신문이라 정의하고는 내용 설명에서는 잡지로 하고 있는 모순이 발견된다. 이와 함께 개신교 카테고리 ‘편찬/발간 경위’에 대한 설명 끝부분에는 “1898년 12월호(통권 58호, 1899년 2월 간행)를 끝으로 폐간되었다”라고 기술되었는데, 이 설명에서 『리포지터리』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가 발견된다.

리포지터리
『리포지터리』 1898년 CONTENTS. 상단에 아펜젤러와 존스 선교사가 공동편집자로 기재돼 있다. 또 하단에는 연간 구독료(3달러)와 권당 가격(30센트)을 표기했다. ©『리포지터리』 1898년 1월호

마지막으로 ‘내용’을 기술한 부분 마지막 글에 “폐간의 이유는 발간 업무를 맡은 원로 선교사들의 귀국과 미납된 구독료의 수금 때문이었다. 이후 선교사들이 발간하는 영문잡지의 전통은 『코리아 리뷰』로 계승되었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기술한 폐간 이유와 『코리아 리뷰』로 계승되었다는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어렵다. 『리포지터리』 영문잡지는 1898년 12월에 폐간되지 않았고, 1899년 6월까지 발행되었다. 폐간하며 계승한 곳은 『코리아 리뷰』가 아니라 〈독립신문(THE INDEPENDENT)〉이었고, 『리포지터리』의 편집권만이 아니라 경영권까지 합병 형식으로 넘긴 것이었다.

필자가 〈선교신문〉과 〈기독일보〉 2021년 4월 27일 자 기고문에 주장했듯이, 『The Korean Repository』가 1898년 12월 종간되어 그 이후 발행되지 않았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는 1899년 2월 9일 1호를 발행한 이래 1899년 6월 1일까지 주간으로 총 17회 더 발행된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3-2. 공공기관에서 발견되는 『리포지터리』 기술의 문제

1899년 발행된 『리포지터리』의 존재를 찾고자 수소문하면서 대한민국 도서관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해 검색해 봤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곳에는 원본은 고사하고 영인본조차도 없었고, 전자책자는 외부 도서관과 링크해야 볼 수 있는 현실이었다. 어느 논자가 평하였듯이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책임자도 한국 최초의 영문잡지인 『리포지터리』가 학술적 가치는 없고 그저 외국인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영어로 작성된 지식의 ‘잡동사니’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국가가 운영 주체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소개하는 『리포지터리』의 소개 문안을 살펴보자.

“1892년 1월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올링거(F. Ohlinger) 부부가 발간한 한국 최초의 영문잡지. 5점. 양장본. 선교사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언어 등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로 구성됨. 서근(書根)에 캘리포니아 성 라파엘 신학대학 알레마니 대주교 도서관의 장서인이 찍혀 있고, 내지에 리차드 데이비스 부부가 도서관에 이 책을 기증했다는 종이가 붙어 있음….”8)

계속해서 이어지는 설명은 잡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고서경매시장’의 상품 설명처럼 기술한 것이 전부였다.

이에 반해 미국을 위시해 영국, 인도에 이르기까지 대학 및 유명 서점들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시기에 한국에서 발행된 『리포지터리』의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영인본 및 POD(선주문 출판) 시스템으로 이 책을 보급하고 있다,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리포지터리』 설명문을 읽어보자.

“이 책은 학자들에 의해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선정되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 지식기반의 일부입니다. …학자들은 이 자료가 대중에게 보존되고, 복제되고, 널리 이용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중요하다고 믿고 있으며, 이에 동의합니다. 양질의 읽기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본 저작은 읽기 쉬운 서체로 원본 그래픽 요소와 텍스트를 원활하게 혼합하는 형식을 사용하여 교정 및 재발행 되었습니다.”9)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옥션 회사에서 『리포지터리』를 소개한 자료이다. 이 홍보자료는 앞에서 소개한 정부 기관이나 공공 연구소, 대학 도서관의 『리포지터리』 자료보다 훨씬 더 충실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어 관심을 끌었다. 또한 여기에 함께 올린 사진에는 1899년 발행 『리포지터리』 영인본을 기존 ‘Volume Ⅴ.’에 이은 ‘Volume Ⅵ.’로 표기한 영인본 사진을 볼 수 있어 매우 주목을 끌었다. 발췌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교 활동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창간되었으며 편집 내용은 한국의 언어, 역사, 문화, 시사적인 내용 등으로 광범위하게 40페이지 내외의 작은 잡지였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사정을 연구하는 데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필진은 잡지를 편집한 아펜젤러, 존스, 헐버트 외에도 게일(Gale. S), 언더우드(Underwood. H. G.) 등 선교사를 비롯하여 주한 미국 공사 알렌(Allen. H. N.) 등 한국에 머물렀던 서양인들이었다.

이 잡지는 1898년 12월까지 월간으로 발행된 후, 1899년부터는 4·6판 4면 또는 8면의 조그만 뉴스 불리틴 형태로 체제를 바꾸어 6월까지 주간으로 발행되다가 중단되었다. 헐버트는 이 잡지 창간호에 실은 한글에 관한 논문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많은 글을 발표하였고, 잡지가 폐간된 뒤인 1901년부터 1906년까지는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를 발행하여 두 잡지가 체제와 내용 면에서는 비슷하다.”10)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잡지를 알리려고 세금을 들여 구입한 후 이름 있는 학예사들이 작성한 설명문과 영리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몰과 국내의 옥션 회사에서 책을 팔기 위해 소개한 『리포지터리』의 설명문을 읽고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 그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스크랜튼 부인이 운영한 고아원여학교
1899년 스크랜튼 부인이 운영한 고아원여학교 모습. 훗날 스크랜튼 대부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3-3. 최근 10여 년간 발표된 『리포지터리』 관련 논문에 나타난 발행 기간 및 발행 권수에 관한 문제

『리포지터리』 관련 책이나 논문에는 사료의 한계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보이는 발행 기간에 관한 오류가 많다.

강혜정은 2017년 『리포지터리』를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주제발표11) 이후 다시 정리해 게재한 논문 여러 곳에서 발행 기간의 오류가 보인다. 그의 논문 34쪽 본문과 각주에 그는 수차례에 걸쳐, 발행된 적도 없는 1894년 발행 『리포지터리』를 설명하고 있으며 더구나 그의 영문 ABSTRACT에서는 『리포지터리』의 발행 기간을 “1885년에서 1889년까지”12)로 기술해 영어권 연구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

『리포지터리』의 종간 연도 기술에서는 거의 모든 선행 연구자들이 이 잡지의 폐간 연대를 1898년으로 한정했다. 그러니 1899년 발행된 『리포지터리』에 관한 연구나 발행 사실을 전하는 논자들이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앞에서 언급한 논자들이 1899년 발행 『리포지터리』에 관한 정보가 없었거나 기존 선행 연구자들의 서술을 너무 신뢰하여 사용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 문제는 거의 모든 정부 산하 관련 기관과 대학부설연구소에서 발행한 연구자들의 자료에도 반복해서 발견된다. 즉, 1899년 발행된 『리포지터리』의 발행 사실이 언급되지 않거나 왜곡되고 있다.

이와 함께 발견되는 커다란 오류는 총 발행 권수를 들 수 있다. 『리포지터리』의 총 발행 권수에 대한 오류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인용한 유영렬·윤정란이 공동 저술한 『19세기 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 -The Korean Repository를 중심으로』를 인용 자료로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총론에서 공동저자는 『리포지터리』의 발행 총 권수를 이렇게 기술했다.

“현재 『The Korean Repository』의 원본이 소실되어 없으며, 영인본 Ⅰ, Ⅱ, Ⅲ, Ⅳ, Ⅴ 등으로 엮어 있다. …총 발행 권수는 58권이지만 현재는 총 57권이 남아 있다.”13)

앞에 소개한 저자 중 이슬(李瑟)은 『리포지터리』 발행이 1898년까지임을 적시하며 총 발행 권수가 60권이라고 2번이나 기술했다. 그의 논문 일부를 인용하자면 13쪽에서 “따라서 총 5년간 매달에 걸쳐 60호를 발간하였다”고 했다. 이어서 15쪽에서는 “이는 5년간 60호에 걸친 잡지 내용의 분석을 통해서 얼마나 조선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는가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리포지터리』 영인본은 현재까지도 여러 질이 남아 있으며 발행 권수는 월간으로는 5년간 60권, 주간은 5개월간 17회 발행되었다. 다만, 필자는 주간으로 발간된 『리포지터리』 중 주간지 연번호 No. 17에서 폐간한다는 공고를 볼 수 있기에 17호까지 발행된 것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미주]
6) 기독교문사, 『기독교대백과사전』, 14권, 1232쪽
7) http://encykorea.aks.ac.kr 검색어 ‘코리안리포지터리’
8) http://www.much.go.kr
9) https://www.amazon.com
10) http://www.da-auction.kr
11) 강혜정 (2017), 「The Korean Repository의 학술 자료적 가치」,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12) Ibid. p.51., ABSTRACT, “The Korean Repository, the first magazine about Korea written in English which was published from 1885 to 1889.”·
13) 유영열·윤정란 (2004), 『19세기 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 경인문화사, 4쪽

리진만(우간다,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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