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고등법원이 최근 기독교 노동자를 중심으로 반복돼 온 차별적 채용 관행과 열악한 하수 노동 환경 문제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1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수십 년간 사회적 주변부로 밀려난 위생·하수 노동자들의 생명권과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법부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CDI는 이번 사건은 법치센터(CROLI)와 파키스탄 통합기독교운동(PUCM)이 공동으로 제기한 두 건의 청원을 다루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재판을 맡은 라자 이남 아민 민하스 판사는 하수·청소 노동자 채용 공고에 관행적으로 적혀 온 “기독교인만”이라는 문구가 명백한 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즉시 사용 금지하도록 명령했다. 앞으로 모든 관련 직군의 채용 문구는 ‘기독교인’ 대신 ‘민간인(civilian)’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법원은 또한 하수 노동자의 반복되는 사망 사고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1988년 이후 최소 70명 이상의 기독교인 노동자가 독성 가스 노출로 목숨을 잃었으며, 시민사회 단체가 집계한 것만 해도 2019년 이후 10명이 넘는다. 민하스 판사는 "하수 노동자는 기계 부품이 아니다"라며, 이들을 독성 가스와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 속에 방치한 것은 구조적 방치이자 중대한 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 기관, 공공 및 민간 자치기관 등에 즉각적인 개선 조치를 요구했다. 모든 하수 노동자에게 보호장비, 가스 감지기, 환기 장치, 응급 처치 체계 등을 제공해야 하며, 향후 두 달 안에 개혁 조치와 이행 상황을 상세히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더불어 법무부는 하수 노동자들의 안전과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법제 마련 또는 개정 절차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PUCM의 알버트 데이비드 대표는 이번 판결을 “파키스탄에서 가장 소외된 노동자 집단을 향한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를 통한 해결 시도가 무산된 이후 사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판결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 이행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배경의 하수 노동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더욱 큰 파급력을 가진다. 데이비드 대표는 "이제 정부 부처나 책임자들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키스탄 국가인권위원회(NCHR)도 최근 수십 건 이상의 산재 사망과 구조적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토대로 연방헌법재판소(FCC)에 별도의 청원을 제기했다. NCHR은 하수 노동을 강요하면서도 보호 장비와 안전 규정이 부재한 현실이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존엄성·평등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FCC는 물·위생청, 폐기물관리기관, 지방정부 등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 공문을 발송하며 심리에 착수한 상태다.
국제인권단체의 분석도 이번 판결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 "우리를 갈라보면 똑같이 피가 흐른다"에서 파키스탄 위생·하수 노동자들이 카스트 기반 차별과 종교적 소수자 배제 속에서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많은 정부 공고가 ‘비무슬림’ 혹은 ‘하위 카스트’만 지원 가능하다고 명시된 점은 구조적 차별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분석했다.
CDI는 기독교인과 힌두교도를 중심으로 한 소수 종교 노동자들이 하수 노동 직군에 묶여온 현실은 파키스탄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제도의 문제를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원의 판결은 그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실질적 변화를 촉구하는 첫걸음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밝혔다.
한편, 파키스탄은 인구의 96% 이상이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픈도어즈가 발표한 2025 세계 기독교 박해지수(WWL)에서 기독교인이 살기 가장 어려운 국가 중 8위에 올랐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번 판결은 종교적 소수자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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