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리며 그의 신학과 삶, 그리고 한국교회와 세계 신학계에 남긴 영향력이 다시 조명됐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 박사)는 8일 오후 서울 안암동 세미나실에서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교수의 삶과 신학’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몰트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한국교회와 신학계 인사들이 참석해 그의 신학적 유산과 현대적 의미를 되새겼다.
1부 기념예배는 정일웅 교수(전 총신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연규홍 교수(전 한신대 총장)가 설교를 맡았다. 이어 유석성 교수(전 서울신대 총장)가 축도했다.
개회사를 전한 김균진 원장은 몰트만 교수를 “20세기 세계 신학 역사 속 혜성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대표 저서인 「희망의 신학」이 전후 절망 속에 놓여 있던 세계 신학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1964년 출판된 ‘희망의 신학’은 구약성서의 희망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해 하나님의 정의로운 세계를 이 땅 가운데 세우고자 하는 새로운 희망과 힘을 불러일으켰다”며 “몰트만 교수는 단순한 신학자를 넘어 깊은 신앙심과 인격을 갖춘 존경스러운 분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오늘 몰트만 교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게 된 것을 큰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 “몰트만이 남긴 사랑의 빚, 한국교회가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사랑의 빚’을 제목으로 설교한 연규홍 교수는 몰트만 교수가 한국교회를 향해 보여준 애정과 헌신을 강조하며 “이제는 한국교회가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했다.
연 교수는 “몰트만 교수님은 독일 사람이지만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선택하시고 한국교회를 깊이 사랑하셨다”며 “그분이 남긴 사랑의 빚을 갚는 일이 곧 생명과 부활의 길”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 속에서 몰트만의 신학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며 “후학을 사랑하고 키워내는 신학적 전통을 이어가야 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 역시 몰트만 신학의 중요한 실천”이라고 전했다.
이날 2부 특별강연에서는 몰트만 교수의 딸인 프리데리크 몰트만 박사(Friederike Moltmann·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연구원장)가 ‘나의 아버지 몰트만 교수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강연했다.
프리데리크 박사는 아버지인 몰트만 교수가 매우 규칙적인 일상 속에서 연구와 사색을 이어갔다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몰트만 교수가 예술작품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한국의 ‘반가사유상’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가사유상에는 ‘희망의 신학’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며 “기독교 희망은 단지 저 세계 너머의 희망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몰트만 교수는 큰 의미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 ‘희망의 신학’부터 생명신학까지… 몰트만 신학의 핵심 재조명
이어진 3부 세미나에서는 김균진 교수(연세대 명예교수)의 진행 아래 김명용 교수(전 장신대 총장)와 이신건 교수(전 서울신대 교수)가 각각 발제에 나섰다. 이후 김영한 교수(숭실대 명예교수)와 이오갑 교수(강서대 명예교수)가 논평을 맡았다.
‘몰트만 신학의 특징들, 그 위대한 공헌과 영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명용 교수는 몰트만 신학의 특징과 세계 신학계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며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등 주요 저서를 중심으로 그의 신학 체계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몰트만의 하나님 나라 신학이 기존 자유주의 신학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고 평가했다. 그는 “몰트만은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를 버리고 세상 속 악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했다”며 “하나님 나라는 인간 역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래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강림하는 미래라고 설명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몰트만 신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십자가 신학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몰트만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하나님 이해를 넘어 십자가의 계시 안에서 인간과 함께 고난받는 하나님을 제시했다”며 “하나님의 전능은 오히려 고난 속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고 했다.
이어 몰트만이 서구교회의 삼위일체론 재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민주주의와 공동체적 평화의 토대를 제공한 중요한 신학”이라며 “인간과 피조물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기반이 됐다”고 했다.
평화신학과 생태학적 신학 역시 몰트만의 핵심 유산으로 소개됐다. 김 교수는 몰트만을 “20세기 후반 평화신학의 사상적 스승”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신학이 유럽 평화운동과 역사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또 “몰트만은 세계교회가 생태와 피조물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끈 생태학적 신학의 선구자였다”며 “그는 단순한 문제 제기를 넘어 거대한 생태신학 체계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메시아적 그리스도론과 통전적 성령론, 생명신학, 만유구원론 등에 대해서도 발표가 이어졌다. 김 교수는 “몰트만이 교회 중심의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넘어 하나님 나라와 역사 변혁을 강조하는 메시아적 그리스도론을 확립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후기 몰트만 신학의 핵심으로 생명신학을 언급하며 “그는 죽음의 힘에 저항하는 영성을 강조했고, 교회가 생명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몰트만이 생애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나는 죽는 순간 부활할 것이고 영원히 살 것이다’라는 가르침은 몰트만이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희망의 신앙이었다”고 설명했다.
◆ “오늘의 위기 시대에도 필요한 것은 몰트만의 희망”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이라는 주제로 발제한 이신건 교수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도래와 전쟁, 기후위기 등 새로운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몰트만이 살아생전 경험했던 시대적 위기와 오늘의 현실은 다르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신학적 열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몰트만의 풍성한 지혜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앞당겨 오시는 희망을 향한 그의 뜨거운 신앙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몰트만이 자주 인용했던 키케로의 문장을 언급하며 “몰트만의 신학 안에서 우리는 ‘숨이 멎더라도 나는 희망한다’고 말할 수 있다”며 “죽은 자의 부활과 만물의 새로운 창조를 약속하신 희망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위대한 희망의 신학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며 “몰트만이 불렀던 희망의 노래를 오늘 우리는 더욱 힘차게 이어 불러야 할 때”라고 했다.
행사는 폐회 순서로 마무리됐다. 폐회사를 전한 김균진 원장은 신학 연구와 학문적 성취에 몰두하는 과정 속에서 자칫 신앙과 인격을 잃어버릴 수 있는 오늘의 신학 현실을 언급하며, 몰트만 교수가 보여준 삶의 태도를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신학 교수들은 신학 이론에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인격과 신앙을 등한시하기 쉽다. 절대 진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확신 속에서 타인을 배제하거나 교만해질 위험도 있다”며 “사회적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인간적 욕망에 사로잡혀 참된 신앙심을 잃어버린 비인간적인 인간이 되기 쉽다”고 말하며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신학자의 삶과 인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행사를 계기로 몰트만 교수의 신학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197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의 학생들을 독일의 많은 교수들이 외면할 때, 몰트만 교수는 한국 학생들을 기꺼이 박사과정생으로 받아주셨다. 몰트만 교수의 위대한 신학뿐 아니라 그분의 인격과 신앙 역시 한국교회와 신학계 안에서 오래 기억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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