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미 밍가
라라미 밍가.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라라미 밍가의 기고글인 '목회자들이 당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What do you do when your pastors don't take your advice?)를 8월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라라미 밍가는 G3 미니스트리의 운영 책임자이자 G3 강해설교 워크숍과 성경적 예배 워크숍의 디렉터로 섬기고 있다. 또한 미국 조지아주 팔메토에 위치한 라마침례교회에서 예배 및 제자훈련 담당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교회에서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예배 순서나 설교 시간, 찬양 선곡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고,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사역에 관한 제안일 수도 있다.

당신은 이 문제를 두고 기도하며 깊이 고민한 끝에 한 목회자에게 정중하게 의견을 전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당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귀담아듣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도 예배 순서는 그대로다. 설교 시간도 여전히 길고, 찬양 선곡 역시 바뀌지 않았다. 새롭게 제안한 사역도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우리가 내리기 쉬운 두 가지 잘못된 결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 결론 가운데 하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둘 다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

첫 번째는 낙심하는 것이다. “목사님들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아.”, “의견을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이 반응은 두 가지 오류 가운데 그나마 겸손한 쪽에 가깝다. 자신의 의견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경청하는 것’과 ‘그 의견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혼동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결론이다.

목회자는 당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신중하게 검토한 뒤, 교회가 현재의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것은 듣지 않은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경청하고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일 수 있다.

두 번째는 교만에 빠지는 것이다. “내 말대로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좌절과 냉소, 식어버린 열정, 복도와 소그룹에서 다른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뒷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밑바탕에는 하나의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내가 의견을 제시했으니 목회자는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내가 건넨 조언은 반드시 내가 원하는 반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에게도, 목회자에게도 이러한 전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보다 바르게 바라보려면 성도가 건넨 ‘조언’의 성격과 목회자라는 직분의 본질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말하되 온전히 신뢰하라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과 우려, 조언을 목회자에게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잠언은 조언자가 많은 것을 지혜로운 일로 평가한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 11:14) ,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 15:22)

목회자라고 해서 이러한 지혜의 원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단정한 성도들로 가득한 교회는 결국 무관심과 방관 속으로 흘러가기 쉽다. 이는 성도에게도 목회자에게도, 교회 전체에도 유익하지 않다.

그러므로 성도는 필요한 말을 정직하고 사랑스럽게 전해야 한다. 다만 의견을 나눌 때에는 자신의 판단을 겸손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생각은 최근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관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목회자들이 이미 수년 동안 연구하고 기도하며 고민해 온 주제일 수 있다. 당신이 바꾸고 싶어 하는 예배 순서는 목회자들이 오랜 시간 성경을 연구하며 세운 예배 신학과 목회적 확신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당신이 제안한 사역은 교회에 오기 전부터 장로들이 여러 차례 검토했지만,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보류했던 사안일 수도 있다. 당신이 건넨 조언 역시 목회자들이 오랜 목회 기간 수차례 듣고 연구하고 기도하며 답해 온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당신의 의견이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조언이 그 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정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기억하라

교회의 모든 결정이 목회자에게만 맡겨진 것은 아니다. 교회 정치 구조에 따라 회중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사안도 있다. 그러나 회중의 고유한 권한에 속하지 않는 목양과 감독의 영역에서 하나님은 목회자와 장로들에게 교회를 돌볼 책임을 맡기셨다.

히브리서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히 13:17)

사도행전도 성령께서 감독자들을 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고 말한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목회자들이 당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한 뒤 다른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셨고, 훗날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할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때 성경이 요구하는 반응은 원망과 분열이 아니라 신뢰와 순종이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 13:17)

쉽게 흔들리는 목회자를 바라지 말라

어쩌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은 이것일 수 있다. 당신은 성도들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는 목회자를 원해서는 안 된다.

말을 잘하는 성도나 영향력 있는 교인이 의견을 낼 때마다 입장을 바꾸는 목회자는 반드시 겸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정하거나 사람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일 수 있다.

회중의 압력에 따라 결정을 자주 번복하는 태도는 배우려는 자세라기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

잠언은 이렇게 경고한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 29:25)

바울 역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삶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끊임없이 쏟아지는 의견 앞에서도 신중하게 숙고한 뒤 자신의 확신을 지키는 목회자는, 때로 그 직분에 반드시 필요한 중심과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안정감은 완고함과 다르다. 성도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에게서 겸손뿐 아니라 분별력과 흔들리지 않는 중심도 기대해야 한다.

목회자들에게: 목자답게 경청하라

그렇다고 이러한 원칙이 목회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들은 어떤 의견을 이미 수십 차례 들어봤다는 이유로, 같은 의견을 다시 전하는 성도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서는 안 된다.

잠언은 이렇게 말한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잠 18:13) 야고보서도 모든 사람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목회자가 성도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야 하는 데에는 최소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듣는다

목양은 단지 양 떼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목양은 양 떼를 알고, 그들의 형편과 생각과 두려움과 필요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성도가 자신의 우려와 생각을 목회자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관계를 신뢰하고 자신의 마음 일부를 맡긴다는 의미다. 따라서 성도의 말을 무시하거나 정중한 태도로 건성껏 넘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

목회자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양 떼를 돌봐야 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벧전 5:2)

성도의 질문과 제안을 성가신 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목양의 본질적인 일부다.

설득될 수도 있기 때문에 듣는다

목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도의 질문이나 제안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하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문제를 한 성도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제기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목회했다고 해서 목회자가 오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경험이 많아질수록 책임이 커질 뿐이다. 처음부터 설득당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닫는다면, 그것은 확신이 아니라 교만일 수 있다.

진정한 확신은 다른 의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충분히 듣고 검토한 뒤에도 진리를 붙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기 위해 듣는다

때로 성도의 제안은 교회의 실제 문제보다 그 성도가 가진 이해의 공백을 드러낸다. 예배란 무엇인지, 교회는 왜 존재하는지, 해당 사안에 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질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목양과 제자훈련의 기회다. 예배 순서에 관한 짧은 대화가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예배에 관한 깊은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운 사역에 관한 제안이 교회의 사명과 우선순위, 은사와 부르심을 함께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잘 듣는 것은 잘 가르치기 위한 첫걸음이다.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경우

여기까지 다룬 내용은 지혜와 목회 철학, 그리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부차적인 판단의 문제에 관한 것이다. 목회자가 성경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이러한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 경우 성도의 의무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호소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성경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교회 정치 구조상 특정 사안이 분명히 회중의 권한에 속한다면, 그 문제는 당연히 회중이 결정해야 한다.

목회적 권위는 절대적 권력이 아니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아래 놓여 있다. 그러나 일상적인 교회 생활에서 지혜와 판단이 필요한 대부분의 문제에 관해서는 건강한 교회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도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되 자신의 주장에 집착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진심으로 경청하되 하나님 앞에서 세운 확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언을 나누는 성도는 겸손을 보여준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조언을 경청하고 필요할 때 기꺼이 받아들이는 목회자는 용기를 보여준다.

겸손한 성도와 용기 있는 목회자가 함께 세워가는 교회는 비로소 세상 앞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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