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오늘날 한국교회가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듯, 500년 전 개혁의 중심 제네바에서도 '교회다움'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개혁자 장 칼빈은 1538년 4월 23일, 성찬 떡 사용과 교회 권징권 확립을 둘러싼 갈등으로 파렐과 함께 제네바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을 지키려는 개혁자의 확고한 신념이 당시 제네바 시의회와 충돌한 결과였습니다. 칼빈은 3년간 스트라스부르크에 머물며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졌고, 이 기간 초판보다 3배나 확장된 기념비적인 『기독교 강요』 개정판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칼빈 부재 시 제네바 교회는 로마가톨릭의 집중포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지도력 상실로 인해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1539년 3월, 교회를 로마가톨릭으로 회유하려는 사돌레토 추기경의 서한에 칼빈은 불후의 『사돌레토 반박문』으로 응수하며 복귀 논의에 불을 지폈습니다. 칼빈은 재차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을 '수천 번 죽는 십자가'라 고백하며 주저했지만, 1541년(32세) 동역자 파렐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제네바 복귀를 결단했습니다. 이는 개혁자의 순전한 사명감이 만들어낸 극적인 복귀였습니다.
칼빈의 추방과 복귀 드라마는 2026년 한국교회에 중대한 교훈을 던집니다. 첫째, 교회의 본질인 성찬과 권징 수호에 대한 개혁자의 고뇌와 헌신은 세속화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신앙의 가치를 되묻게 합니다. 둘째, 지도자 부재가 가져온 교회의 타락은 말씀 위에 굳건히 서는 것과 영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경고합니다. 셋째, 고난 속에서도 사명을 감당한 칼빈처럼, 한국교회 역시 고통 속에서라도 개혁의 길을 찾아야 함을 시사합니다.
32세의 칼빈이 제네바의 부름에 응답하여 두 번째 개혁 사역을 시작했던 것처럼, 2026년 한국교회 또한 본질에서 벗어난 모습들을 되짚고 새로운 개혁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 개혁은 고난의 길이지만, 결국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