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 박사)는 8일 오후 서울 안암동 세미나실에서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교수의 삶과 신학’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아래 글은 이날 세미나에서 이신건 박사가 발표한 발제문을 요약한 것입니다-편집자 주
불멸의 희망을 외친 신학자 - 위르겐 몰트만이 남긴 위대한 신학적 공헌
위르겐 몰트만은 20세기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대표적 신학자로 평가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망과 허무가 세계를 뒤덮던 시대 속에서 『희망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 신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서구 사회에는 ‘세속화 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신학이 확산되고 있었지만, 몰트만은 오히려 성서적 희망과 종말론적 미래를 강조하며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신학을 선포했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의 무신론적 가정에서 태어난 몰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시편과 예수의 십자가 외침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자신과 함께 고난받는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실존적 체험은 이후 그의 신학 전체를 이끄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단순히 세계 밖이나 세계 안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오시는 “희망의 하나님”으로 이해했다.
몰트만의 신학은 특정 체계나 방법론 아래 미리 설계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위기와 역사적 도전에 응답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됐다. 그는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등을 통해 희망과 십자가, 교회와 성령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이후 삼위일체, 창조, 정치신학, 생명신학, 종말론 등으로 신학의 영역을 넓혀갔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가톨릭 신학, 동방교회, 유대교 등과의 대화를 통해 열린 신학적 태도를 유지했다.
몰트만 신학의 핵심은 ‘희망’이다. 몰트만에게 희망은 인간의 낙관주의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그는 성경의 계시를 과거의 사실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미래를 약속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신학은 단지 과거를 해석하는 학문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는 종말론적 작업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몰트만은 하나님의 약속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의의 미래’다. 하나님의 의는 단순한 도덕적 정의가 아니라 만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질서이며, 새로운 창조를 향한 희망의 근거다. 둘째는 ‘부활의 약속’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미래를 여는 실제 사건으로 이해했다. 셋째는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개인의 영혼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피조물 전체를 향한 보편적 구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특히 몰트만은 부활 신앙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가 예수의 부활과 함께 서고 무너진다고 말하며, 부활 없는 신앙은 참된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음이 단순히 죄 사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죽음을 넘어서는 새 창조와 영생의 희망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몰트만은 인간의 부활 시점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했다. 초기에는 전통적 종말론에 따라 마지막 날의 부활을 강조했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는 ‘죽음 속의 부활’ 개념을 수용했다. 그는 인간이 죽음의 순간 곧바로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육체는 썩지만 인간의 전체적 존재는 하나님 안에서 보존되며, 새로운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바울의 씨앗 비유를 통해 설명하며, 현재의 생명이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변형된다고 이해했다.
몰트만은 인간의 부활을 인간 개인에게만 제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새 창조를 기다린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근거로, 인간과 자연 전체가 함께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부활은 단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우주적 사건이다.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97세 생일 자리에서도 자신은 죽음의 순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는 “죽는다는 것은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말하며, 부활의 희망 속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바라보았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 전쟁, 기후위기 등 새로운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몰트만의 희망 신학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몰트만은 평생 “숨을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는 말을 즐겨 인용했지만, 그의 신학은 여기서 더 나아가 “숨이 멎더라도 나는 희망한다”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만물의 새 창조를 약속하신 희망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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