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이 전쟁에서 복음까지, 3천 년을 건너온 인간의 이야기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정재우 목사 ©세인트하우스 평택

전쟁은 끝나도 사람들의 방황은 끝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폐허가 된 도시,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가족들, 중동의 분쟁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가?”

놀랍게도 이 질문은 3천 년 전에도 동일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전쟁과 귀향이라는 인간의 깊은 경험을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담았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디세이》를 다시 영화로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은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분노와 명예를 노래한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적보다 자신의 내면과 싸워야 했다. 분노는 그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했다.

《오디세이》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다. 승리한 영웅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바다를 떠돈다. 폭풍과 괴물, 유혹과 절망을 지나며 그는 깨닫는다. 인간이 진정 찾아야 할 것은 새로운 정복지가 아니라 돌아갈 집이라는 사실을.

놀란 감독은 이 ‘귀향’이라는 주제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 오늘의 인간은 인공지능과 무한 경쟁, 관계의 단절 속에서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마음의 평안을 잃고, 더 넓게 연결되었지만 영혼은 더욱 외로워졌다. 어쩌면 현대인은 모두 길을 잃은 오디세우스인지 모른다.

성경 역시 귀향의 이야기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떠났고,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보여 주셨다.

집을 떠난 아들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끝까지 기다렸다. 복음은 인간의 실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팡세(Pensée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주께서 우리를 주를 향하도록 지으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주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쉼을 얻지 못합니다.”

인간이 성공과 재물, 명예를 얻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혼의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 안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가 있기에.

오늘 세계는 또 다른 트로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뿐 아니라 세대 갈등, 경제적 불안, 기후위기와 공동체의 해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우리는 승리하는 법은 배웠지만 돌아오는 법은 잊어버렸다. 성취하는 법은 알지만 사랑을 회복하는 법은 잃어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질문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호메로스는 영웅의 귀향을 노래했고, 복음은 죄인의 귀향을 노래한다. 하나는 이타카를 향한 항해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향한 귀환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결국 한곳에서 만난다. 인간은 모두 돌아갈 집을 찾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의 오디세이다. 때로는 폭풍을 만나고, 때로는 길을 잃는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승리는 가장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다. 그러나 인간의 귀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떠났느냐가 아니다. 끝내 어디로 돌아오느냐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복된 귀향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비로소 잃어버린 평안과 참된 안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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