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티아 안티카는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중해를 끼고 있고, 로마 시내를 세로로 흐르는 테베레강의 하구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의 4대 왕 안쿠스 마르키우스가 처음 세웠다고 전해진다. 당시로는 매우 귀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고고학적으로는 BC 4세기경, 군사 요새 형태로 조성되었다고 본다. 해안 방어와 테베레강의 진입로 통제가 주목적이었다.
공화정 말기의 집정관 시프로 오피우스의 묘비와 기념비가 발견되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측근, 아그리파가 이곳 대형 극장(Teatro Romano,현재도 음악회 열고 있음)을 건축했다. 또한 클라우스 황제가 인공항을 건설하였고, 트라야누스 황제가 대형 내항(대형 곡물선 200척, 정박 가능)을 확장 건설하여 로마 최강의 물류 센터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드리우스 황제가 단지들을 대거 신축 및 개축했다.
포에니 전쟁을 거치며 로마 해군 기지의 역할을 수행했고, 로마의 인구가 점증함에 따라 곡물 및 생필품을 수입하는 상업적 항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기원전 68년에는 해적들의 침략으로 파괴를 당하자, 키케로는 가슴 뜨거운 연설로 애국심을 고취시켰고 그 결과 폼페우스를 세워 방어를 책임지게 하여 더 이상 해적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서기 1-2세기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트라야누스 황제가 새 항구인 포르투스(Portus)를 건설하여 최전성기를 맞았고, 거주민이 5만명에 이르는 다문화 국제도시로 크게 성장했다.
인구 증가와 함께 공중 목욕탕, 극장, 공동주택(인술라)들이 건축되었다. 그후 3-9세기 로마제국의 위기와 더불어 무역이 줄었고, 강물의 퇴적으로 항구가 구실을 못하게 되어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말라리아의 범람과 아랍해적들의 반복적인 침략으로 주민들이 떠나면서 9세기 무렵 완전히 버려지게 되었다. 이 도시는 강물의 퇴적물로 완전히 덮여버림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무솔리니, 바티칸 등이 발굴함으로 옛 도시가 드러나게 되었다. 오히려 퇴적물에 덮여있음으로 1천 5백 여년 동안 유적들이 보호되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채색된 그림들, 서민들의 아파트인 인슐라가 3-4층까지 남아있고, 층계까지 보존되어 초기 로마제국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마치 폼페이가 화산재로 덮여있음으로 보존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가운 사실이 이 곳이 383년 어거스틴이 로마에 도착한 항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수도였던 밀란으로 갔다가 거기서 거듭남을 경험하고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 모니카 여사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와서 배를 기다렸다. 그의 고백록에 의하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머물렀다고 했는데, 그 한적한 숙소는 오시티아에 다양하게 건축된 인슐라 아파트의 4-5층이지 않을까 싶다. 거기서 어머니와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었고, 놀라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 중에 어머니가 말라리아에 걸려 손쓸 사이도 없이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얼마나 안타깝고 황망했을까? 어릴 때부터 동거녀로 인해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어거스틴이었기에 이제부터 홀로계신 어머님을 잘 모시려고 했는데 말이다. 당시 이곳에는 교회가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여 교회의 자유를 선언한 이후, 이곳에는 큰 교회가 세워졌다. 작은 교회도 있었음을 유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회당인 시나고규의 유적도 있고…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아버지 묘지 옆에 모시고자 했다. 그러나 모니카 여사는 우리는 장차 부활할 텐데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 수고스럽게 그리하지 말고 여기다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말씀을 따랐다. 그리고 모니카 여사의 묘지는 1430년 오스티아 안티카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당시에 많은 성도들이 존재했던 이곳 교회의 성도들이 이 모든 일들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유적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영적 선배 어거스틴의 족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더욱 중요한 곳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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