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샘 레이너 목사의 기고글인 ‘평범한 목회자가 좋은 리더로 성장하는 방법’(How below-average pastors become good leaders)을 9월 1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레이너 목사는 플로리다의 웨스트 브래든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처치 앤서스(Church Answers)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필자는 평균 이하의, 어쩌면 평균보다 훨씬 뒤처진 목회자였다. 멘토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리더십 관련 책을 읽으며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 기도했지만, 실제로 나아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중에는 평범한 리더가 위대한 리더로 도약하는 방법을 다룬 책과 강연이 넘쳐난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하며, 책 한 권을 더 읽고 콘퍼런스에 한 번 더 참석하거나 학위를 하나 더 취득하면 ‘위대한 리더’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필자 역시 평범한 리더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배우려는 열망과 자기 객관화(self-awareness), 성실한 직업윤리는 리더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단순히 평범한 수준을 넘어 실제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판단을 자주 그르치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긴다. 20년 전의 필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목회자들은 왜 평균 이하의 리더십에 머무는 것일까. 원인은 다양하다.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감성지능(EQ)이 낮을 수도 있으며, 필요한 지식이나 리더십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대부분의 목회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식으로 성도들을 이끌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또한 대부분의 목회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유형의 리더를 사용하신다.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다를 수 있고, 특정 환경에서 탁월한 사람이 다른 환경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경험이나 전문성이 다른 쪽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회적 진정성이 곧 효과적인 리더십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리더십 면에서는 매우 서툴 수 있고, 좋은 의도를 갖고 있어도 반복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열심히 사역하면서도 조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잘못된 방식이 수년간 반복되면 그것은 습관이 되고, 반복되는 실수와 교정되지 않은 약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한 리더를 실제로 좋지 않은 리더로 만들 수 있다.
때로는 능력 부족의 원인이 직책이나 환경과의 부조화에 있을 수도 있다. 훌륭한 담임목사가 반드시 훌륭한 중등부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며, 탁월한 찬양 사역자가 훌륭한 어린이 사역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사람마다 은사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리더십의 실패를 단순히 ‘자리가 맞지 않아서’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리더십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성품의 실패와 능력의 실패를 구분해야 한다
나쁜 리더십은 크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성품의 결함과 능력의 결함이다. 이 둘은 서로 겹칠 수 있지만 필요한 처방은 전혀 다르다.
성품의 실패에는 회개와 책임이 필요하다. 권력을 남용하거나 사람을 착취하고, 지속적으로 거짓말하며, 부도덕한 행동을 반복하는 리더라면 단순한 리더십 코칭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임이나 면직 등 직위에서 물러나는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사람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리더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능력 부족은 다른 문제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능숙하지 못한 리더도 있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을 해칠 의도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만이 아니라 겸손과 훈련, 교정과 반복적인 연습이다.
이 글의 초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윤리적인 리더를 회복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비효율적인 목회자가 어떻게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소명을 비판을 막는 방패로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리더십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평균 이하의 목회자가 성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태도 가운데 하나는 모든 비판을 자신의 소명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역으로 부르셨을 수 있지만, 그 사실이 그 사람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지혜롭다는 뜻은 아니다. 목회적 소명과 리더십 능력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좋은 목회자는 자신의 소명의 정당성과 자신의 판단 능력을 구분할 줄 알며, 누군가 자신의 결정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면적으로 안정돼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더 높은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검증된 리더들에게 교정받는다
서툰 리더로 계속 남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신의 약점을 지적받을 때마다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능력이 부족한 목회자들은 종종 변명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반면 성장하는 목회자는 ‘호기심’을 갖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묻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지 살피며, 자신을 정당화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사람을 의도적으로 곁에 둔다.
리더에게는 자신을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그 결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말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습니다”, “지금 이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미 검증된 리더와 장로, 동료 목회자, 멘토의 피드백은 매우 중요하며, 좋은 리더는 쓴소리를 듣는 능력을 훈련한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서툰 목회자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를 망쳐야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더십은 의도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서툴게 전달된 결정은 여전히 혼란을 만들고, 충분한 설명 없이 추진한 변화는 성도들을 분열시킬 수 있으며, 부주의한 말 한마디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남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좋은 의도는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면제해주지는 않는다.
평균 이하의 목회자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필자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리더십이 실제로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를 묻기 시작할 때다. 의도와 결과 사이의 차이를 직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리더십은 바로 그 차이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쁨을 진전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나쁜 리더도 얼마든지 바쁠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하고, 문자와 이메일에 답하고, 설교를 준비하며, 갈등을 중재하고, 각종 행사와 모임을 오가느라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다. 문제는 바쁘다고 해서 반드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결정하지 못한 리더에게 바쁨은 훌륭한 은신처가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면 방향이 없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하는 목회자는 단순히 눈앞의 긴급한 일에 계속 반응하는 것이 리더십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분별하고,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며, 그 방향을 위해 몇 가지 핵심 우선순위에 꾸준히 집중한다.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며, 좋은 리더십은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동시에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낙심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격려하는 사람이 된다
서툰 목회자는 문제를 발견하는 데는 뛰어나면서 해결책을 만드는 데는 약할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왜 안 되는지,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누구보다 빨리 찾아낸다. 스스로는 자신을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와 대화하고 나면 에너지가 빠지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다.
성장하는 목회자는 시선을 바꾼다. “왜 안 되는가”에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로 이동한다. 그렇다고 실제 문제를 외면하거나 무조건 긍정적인 말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좋은 리더는 현실을 정확하게 보면서도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
문제를 지적한 뒤 해결책을 함께 찾고, 약점을 말한 뒤 성장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실패를 다룬 뒤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리더보다, 문제 속에서도 희망과 방향을 보여주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어려운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하나의 결정임을 안다
평균 이하의 목회자들은 종종 수동적인 태도를 인내심으로 착각한다. 불편한 대화를 미루고, 계속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역을 방치하며, 평화를 지키겠다는 이유로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점점 커지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나 미뤄둔 갈등은 대개 사라지지 않고 더 복잡하고 파괴적인 형태로 돌아온다. 리더가 결정을 내리지 않는 동안에도 조직은 계속 움직이며, 우유부단함 역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좋은 목회자는 용기와 긍휼을 함께 가지고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문제가 위기가 되기 전에 대화하고, 필요한 경우 방향을 수정하며, 때로는 인기 없는 결정도 감당한다. 물론 성급함과 결단력은 다르다. 좋은 리더는 충분히 듣고 생각한 뒤 결정하지만, 결정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끝없이 미루지는 않는다. 잘못된 결정이 교회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처럼,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교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경쟁보다 협력을 만든다
나쁜 리더는 사람들을 쉽게 편으로 나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서로 다른 그룹의 취향과 관심사를 경쟁 관계로 만든다. 교회 안의 부차적인 신학적 차이나 예배 스타일, 세대별 선호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 진영 논리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리더십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공동의 사명보다 자신의 그룹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반면 좋은 목회자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은사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지 않고 함께 사역할 수 있도록 돕고, 차이를 없애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 차이가 분열의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아야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리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사명을 위해 함께 움직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위대함보다 먼저 좋은 리더가 되는 것
좋지 않은 목회자는 여러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심각한 실패를 보일 수 있다. 반면 평범한 목회자는 대체로 몇 가지 특정 영역에서 분명한 약점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최고의 목회자들은 자신에게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속적인 성장은 효과적인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비윤리적인 리더십은 회개와 책임을 요구하며, 경우에 따라 사임이나 면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리더십은 다른 문제다. 겸손하게 배우고, 피드백을 받아들이며, 훈련하고, 실패를 분석하고, 다시 연습한다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목회자라고 해서 잘못된 결정과 파괴적인 습관에 평생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리더십은 타고난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배울 수 있고 훈련할 수 있으며 성장할 수 있다.
‘위대한 리더’가 되는 것은 멋진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평균 이하의 리더라면 먼저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충분하다. 그것은 결코 작은 목표가 아니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목회자가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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