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최근 세계의 이목을 끈 사건이 있었다. 이름부터 충격적이었다. '바퀴벌레당(Cockroach Party).'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웃음이 아니라 깊은 절망과 분노가 숨어 있었다.
이 운동은 청년들을 향한 모욕적인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일부 공직자의 발언 속에서 청년들은 마치 사회에 부담만 주는 존재, 쉽게 짓밟아도 되는 존재처럼 취급되었다. 이에 분노한 인도의 Z세대는 그 멸칭을 오히려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우리는 바퀴벌레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살아남을 것이다." 모욕을 저항으로, 절망을 연대로 바꾸어 낸 것이다.
사실 바퀴벌레는 인간에게 가장 혐오스러운 곤충 이지만 약 3억 년 동안 지구의 수많은 환경 변화를 견뎌 낸 놀라운 생명력의 소유자다. 강한 번식력과 적응력, 그리고 생존력은 다른 생물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다. 그래서 바퀴벌레는 혐오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라는 역설적인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인도의 청년들이 바퀴벌레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시당하는 세대가 아니라 살아남아 세상을 바꾸겠다는 세대임을 선언한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청년들의 분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실언 때문이 아니었다. 만성적인 청년실업, 공무원 시험 부정 의혹, 극심한 취업 경쟁, 정치권의 부패, 사회적 불평등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이 하나의 상징을 만나 폭발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것은 인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청년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기 어렵다. 집값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끝없는 비교 문화는 마음의 병을 키운다. 통계 속 숫자는 경제 문제를 말하지만, 청년들의 표정은 존재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지금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공정한 출발선이며, 시혜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희망이다.
정치는 청년을 선거철의 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로 보아야 한다. 청년 일자리와 창업 생태계를 확대하고, 주거 부담을 줄이며, 교육과 채용의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정신건강과 사회적 고립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 청년 정책은 복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한국교회 역시 이 문제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많은 교회가 청년이 떠난다고 걱정하지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청년들의 아픔을 얼마나 들었는가?"이다. 교회는 설교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취업과 창업을 돕는 멘토링, 심리적 회복을 위한 상담, 세대가 함께 대화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을 미래의 교회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로 인정할 때 비로소 희망은 시작된다.
성경은 "젊은이들에게는 환상을, 늙은이들에게는 꿈을"(요엘 2장)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한다. 꿈을 잃은 청년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한 나라의 위기이며, 한 세대의 절망은 공동체 전체의 상처가 된다.
인도의 '바퀴벌레당'은 결코 바퀴벌레를 찬양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지 말라"는 청년들의 절규이다. 그 절규를 조롱하는 사회는 미래를 잃고, 그 절규를 경청하는 사회는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정치 구호가 아니다. 청년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듣는 귀이며, 그들의 손을 붙잡아 줄 용기이다. 한 사회의 미래는 청년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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