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박명수 교수(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교회사)의 논문 ‘조미수호통상조약 140주년의 역사적 배경과 그 의의’를 연재합니다. 2022년은 조미수호통상조약 140주년입니다.

4. 한국 근현대사에서 본 한미조약의 의미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비록 1876년에 맺어진 강화도조약이 조선이 근대식으로 맺는 최초의 조약이지만 조선은 이 조약을 전통적인 사대교린의 범주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따라서 내용적으로 볼 때, 1882년에 맺어진 조미조약이야말로 조선이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에 속하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고종은 조미조약이 갖고 있는 국제적인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 조미조약을 기초로 해서 영국, 독일, 이태리, 러시아, 프랑스와 같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확대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조미조약은 단지 하나의 조약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질서를 조선에 가져온 최초의 조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미조약을 맺었다는 것은 미국을 통하여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조선은 중국을 통해서 대륙문명을 받아들였고, 소위 양무운동을 통해서 서양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1880을 전후해서 소위 개화파를 중심으로 일본을 통해서 문명을 받아들이려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중국과 일본이 서양문물을 배우는 통로였다. 그러나 1882년 조미조약을 맺고, 1883년 소위 견미사절단이 미국에 다녀 오면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문명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종교를 배웠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서 선교사들이 한국에 오기 시작하였고, 한국인들은 미국을 통해서 서양문명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특별히 친미 기독교인사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통하여 중국의 봉건주의와 일본식 서구문명을 극복하고 보다 더 서구문명의 본질을 접하고,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1882년에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맺고, 서구문명을 수용했다는 것은 유럽의 서양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영국은 민주주의이지만 동시에 왕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영국식 모델을 따랐다면 우리도 메이지 유신의 일본과 같이 입헌군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을 통해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고, 이것은 입헌군주제가 아니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카톨릭 선교를 외교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우리가 프랑스와의 조약을 맺고 그 영향 아래 있었다면 오늘의 개신교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영미개신교전통이 가져다 준 자본주의와 근대과학의 발전을 향유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 속해있지만 유럽의 근대문명과는 거리가 먼 나리이다. 러시아는 대의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았고, 짜르가 절대권력을 가졌다. 대한제국은 이런 소련이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런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근대국가로 만들어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882년 조미조약은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반도 주변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각각 한반도를 거점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오래 동안 중국만이 한반도에 위협이었고, 16세기부터는 일본이 여기에 가세했고, 19세기 부터는 러시아가 여기에 가세하였다. 이들 세나라는 개항기에 각각 1882년 임오군란부터는 는 중국이, 1895년 아관파천부터는 러시아가, 1905년 을사늑약부터는 일본이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런 상황 가운데 미국은 항상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보다 분명한 서구문명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국기독교인들은 서구문명에 기초한 국가를 만들기를 원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한반도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일본을 패망시키고, 소련의 영향력을 저지하였으며, 중공군을 막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미국은 한반도 주변의 세나라로부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약을 통해서 근대문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다음의 몇가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체재이다. 19세기에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체재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었다. 한국은 미국을 통해서 이런 정치제도를 알게 되었고, 이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뿌리가 되었다. 둘째, 시장경제를 중심으로하는 자본주의 제도이다. 미국은 사적 소유권을 존중하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이런 시스템을 가진 미국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국은 미국을 통해서 이런 시장경제를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구체적으로 확립된 것은 1954년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진 헌법 개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무역과 사기업의 육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셋째는 정교의 분리와 종교의 자유이다. 미국은 정교분리에 기초해서 국가가 종교를 강요하지 않지만 동시에 누구나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종교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에서 들어온 개신교는 국가를 이용해서 종교를 확장시키려 하지 않았고, 다른 종교가 누리지 못하는 배타적인 특권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고려에서 불교, 조선에서 유교가 받은 국가적 혜택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미조약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의 정신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형성하는 중요한 정신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계속)

박명수(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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