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기독일보 DB
1973년 인 듯 싶다. 암스텔담 근교에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때는 한인교회를 만들지 못했지만, 목사인 필자가 중심이 되어 성도들 몇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리곤 했었다. 어느 가정이 신도시로 이사를 갔었기에, 10여 명의 성도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었다. 당시 암스텔담에는 옛날 아파트뿐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있을리 없었다. 그러나 신도시를 실험적으로 만든 새 아파트는 7~8층이 되었기에 신식 엘리베이터는 기본이었다. 심방을 마치고 모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정원이 초과되었다. 당시 한국에도 엘리베이터를 별로 본 일이 없었기에,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인원이 초과 된 줄도 모르고 모두 탔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무게를 견디지 못 해 지하실 중간까지 내려앉았고, 모두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모두가 30분 이상 두렵고 난감한 표정으로 얼마 동안 가슴 졸이다 아파트 관리 기술자에 의해 겨우 구조된 참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50년 전 일이라 교포들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 후 필자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게 될 때, 그때가 자꾸 생각나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다. 엘리베이터가 활성화되기는 겨우 150년 전이었다고 한다. 1852년 엘리샤 오티스(Elisha Otis)가 고안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57년에 최초 여객용 엘리베이터가 뉴욕 브로드웨이 백화점에서 사용되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고속 엘리베이터가 발전되고, 전기 모터가 구동기를 회전시키면 바퀴에 감긴 로프가 돌아가면서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속도 조절을 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수직 교통수단이다. 100층이 넘는 롯데 타워도 모두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자유롭게 운용되고 있다. 그 편리함과 신속함은 현대인들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 필자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음을 알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저께 대학 동문 목사님들이 함께 모였었다. 우리를 초대한 목사님은, 경기도 포천시의 신정호수가 가까운 곳에서 목회하시는 임웅재 목사님이셨다. 교회는 2층 벽돌 교회당으로 잘 지었고, 본당은 약 200여 명 이상, 회집 할 수 있는 아주 잘 지어진 교회당이었다. 하지만 모든 시골교회가 그러하듯이, 시골교회는 인구 감소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은 사라지고, 그나마 노인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시는 형국이어서, 주일 낮 예배 때는 10여 명이 모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담임 목사님께서는, 주일 1부, 2부, 저녁 예배까지 인도하면서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 목사님의 영혼 사랑의 간증을 듣고 여기에 옮겨 본다. 담임 목사님은 시골 환경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도에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 마을에 선천성 여성 장애우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천국 복음’과 ‘생명의 도’를 증거하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오실 것을 초대했었다. 하지만 그 여성 장애우는 냉정히 말하기를, “나 같은 사람은 2층 계단을 올라갈 수 없습니다. 내가 교회에 가려고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라고 했다. 그때 가슴이 뜨거웠던 목사님은 그녀에게 대답하기를, “그러면 당신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주면 주님의 교회에 나와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선천성 여성 장애우는, 목사님의 말씀이 그냥 해본 소리인 줄로만 알고 받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임 목사님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그 장애우 여성의 영혼을 살리기를 원하신다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적극적인 후원을 구하고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수천만 원의 돈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임 목사님은 사방으로 기금을 모아 드디어 1~2층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공사를 마쳤다. 목사는 허언(虛言)을 해서는 안 된다. 임 목사님은 사력을 다해 공사가 끝난 후 그 여성 장애우를 교회로 초대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 여성 장애우는 자기 한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만드신 목사님께 감복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앙생활을 되찾고, 그 교회에서 가장 신실한 성도가 되었다. 그분은 교인으로서 기본적인 삶은 말할 것도 없고, 말 그대로 지사충성(至死忠誠)하는 모범적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다시 그 교회를 찾아간 나에게, 한 사람의 성도를 위해서 가난한 교회가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흔히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말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자는 별로 본 일이 없었다. 필자도 오래전에 농촌 개척을 해본 일도 있고, 교회를 지어서 헌당식을 해본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농촌 인구가 급감하고, 교회는 텅 비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사에게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실천하는 것은, 성경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교회는 새로운 방법으로 부흥되는 것이 아니고, 결국 ‘말씀’과 ‘성령’이 함께 해야 하고, 목회자가 영혼 구원에 타는듯한 진심이 있을 때, 교회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날씨가 많이 추운 요즘, ‘한 사람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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