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정성구 박사

‘신앙과 양심은 위기 속에 더욱 선명해 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보면 진정한 신앙의 양심과 도덕은 환란과 핍박 중에 더욱 정제되고 빛이 났다. 그리고 진정한 지도자는 전쟁과 혼란의 시기에 역사의 물고를 바꾸고 위대한 교훈을 남긴다. 나는 역사 공부를 많이는 못 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은 참으로 대단했다. 특히 「종교개혁사」나 「한국 근대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지구를 여러 바퀴 돌았고, 50년 전부터 한국 근대사의 자료를 찾으려고 청계천과 인사동을 뻔질나게 다녔고, 전국 어디든지 다녀 봤다. 그래서 어떤 자료는 어디 두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며칠 전 서재를 정리하다 실크로 된 가로 30cm, 세로 30cm로 된 손수건 하나를 발견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었다. 그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거침없이 우리나라를 진격해 왔다. 우리 군인들은 밀리고 밀려 낙동강 전선을 힘겹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라가 공산화되기 직전, 다부동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던 백선엽 장군의 분투와 UN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키고 북진할 수 있었다. 9·15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9·28 서울 수복을 했다. 그러나 서울 탈환을 할 때, 전공은 미군이 세웠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참에 남과 북을 통일해야겠다’ 결심하고, 우리 국군과 UN군을 격려해서 전선은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평양 수복이 눈앞에 보였다.

그런데 평양 탈환을 앞두고 한국군과 UN군, 한국군과 한국군끼리 ‘누가 먼저 평양을 수복할 것인가!’를 두고 전공을 차지 하려고 서로 다투고 있었다. 하마터면 우리 군끼리 서로 교전할 뻔했었다. 그러나 1사단이 평양을 수복하고 다른 사단과 UN군도 거의 같이 평양을 탈환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때까지 평양 시민은 4년 가까이 공산 정권에게 박해, 수탈, 감시, 강제 동원 등등.. 참혹한 죽음을 보았던지라, 평양 시민들은 국군을 열렬히 환호하고 환영했다.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나와 만세를 외쳤다. 그것을 기념하는 ‘평양 수복 기념 손수건’의 내용은 이렇다. 먼저 UN기, 성조기, 태극기, 영국기 깃발이 있고, 영어로 Daegu, Daejeon, Incheon, Seoul의 전투 장면이 있고, 마지막에는 “Take up Pyongyang”이라고 인쇄되었다. 지금의 디자인으로 보면 다소 조잡해 보이지만, 평양 수복의 기쁨을 모두가 나누려고, 한국군, UN군, 미국군, 영국군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지금부터 80년 전 자료다.

평양 수복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평양 시민의 환영을 받으면서 감격하여 다음과 같이 ‘평양 수복’ 연설을 했다.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공산당의 폭정 아래 신음하던 평양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 서니 감격을 금할 길 없습니다. 이 땅은 본래 ‘자유’와 ‘신앙’의 땅이요, 민족의 양심이 살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거짓과 폭력으로 이 나라를 빼앗고,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를 말살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전쟁은 단순한 영토싸움이 아닙니다. 이는 자유와 공산주의, 진리와 거짓 ‘신앙’과 ‘무신론’의 싸움입니다. 북한 공산당은 민족을 위한다고 말했으나, 실상은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동포들을 학살하고, 나라를 파괴했습니다. 우리는 이 거짓을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원수를 갚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민족을 살리고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남과 북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공산 폭정을 몰아내고, 자유와 정의 위에 ‘통일 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전쟁에서 죽어간 수 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나는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정의의 편에 선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맙시다. 자유대한민국은 반드시 완전한 승리를 이룰 것입니다!”

이것은 녹음 기록이 아니지만, 여러 사료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 등에서 나온, 자유, 반공, 신앙, 통일이 핵심이었다. 그 후 UN군과 한국군은 계속 북진했고,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중국으로 도망갔던 김일성이 중국 인민군대를 불러드려, 이른바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결국 아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군에는 실상 조선족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중국은 조선족을 총알받이로 삼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방해한 주적(主敵) 이다. 또 조선족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엄연히 중국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칼 전쟁이 아닌, 이념 전쟁 중이고, 역사 전쟁 중에 있다. 지난 80년 동안 이승만 죽이기 운동이 계속 되어 왔다. 그래서 이승만이 세운 자유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는 중국 세력은, 자유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까지 모든 영역에 포진하고 있다.

어째서 이 나라는 국부(國父)이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가 없는지! 1948년 8월 15일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지의 머리기사는 다음과 같다.

Korea Set up as Republic,
「The Regime of Tai Han Min Kook-Republic of Korea-was proclaimed as the nation’s soverelgn government by its first Prsident Dr. Syngman Rhee」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