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의한 자 비유

1) 부정직한 청지기 비유(눅 16:1-13)

(1)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로운 처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경감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예수는 부정직한 청지기(the Dishonest Steward) 비유를 말씀하신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4절)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13).

부정직한 청지기(the Dishonest Manager) 비유에서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이 자신이 행한 사실을 듣고 자신을 해고할 것을 알고 이에 대비한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빚을 감면해준다. 교활한 청지기(shrewd steward)의 행한 일을 들은 주인은 그를 칭찬한다. 비유가 주는 가르침은 사라질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주변의 가난한 자들과 소유를 나누어 영원한 거처(eternal dwellinghouse)에 저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재물(wealth)을 남용하여 잘못을 범했을 때, 사회적으로 소외된 어려운 자들에게 저들의 빚을 감해주는 방식으로 불의한 재물을 바르고 충실하게 처리할 때 이들이 우리를 영원한 삶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재물은 소멸하지만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줄 때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재물에 대한 지혜로운 사용법 교훈: 재물을 가난한 채무자들에게 나누어 줌.

예수는 세상에서 재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시기 위해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들려주신다. 부정직한 청지기는 어느 부자의 재정관리를 담당하였다. 그는 주인의 재정을 관리하는 전반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고, 심지어는 주인의 이름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었다. 이런 직무를 위임받은 청지기는 청렴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그러하지 못했다. 청지기는 자신에게 위탁된 자금을 잘못 관리하여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고 방만(放漫)하여 주인의 돈을 유용하였다. 이 상황을 보고 받은 주인은 청지기에게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고 위탁된 일에 대한 결산을 요구하였다. 결산을 본 후에 그 청지기를 해고하기 위하여 회계 관련 서류 제출을 요구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직무 사용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신다.

(3) 해고를 면할 묘안으로 청지기는 어려운 자들의 빚을 탕감.

청지기는 앞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궁리를 한다. 그는 노동을 하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주인 자산관리를 불실하게 한 전과(前過) 때문에 그를 다시 재정관리로 고용할 자도 없다. 그리하여 그는 빚진 자들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교활한 안을 생각해 낸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빚을 삭감해준다. 유대인들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이자를 부과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주석가들은 그 부자가 채무장부에 이자를 기록하지 않고 숨겼을 것이며 이 청지기가 그 돈을 횡령하여 재산을 축척하여 정식으로 액수를 기록하지 않고 숨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빚의 액수를 줄여준다고 해서 주인에게 손해가 될 것이 전혀 손해가 될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Bruce B. Barton, Dave Veerman, Linda K. Taylor, Luke, 『누가복음』, 620). 그는 이것이 나중에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계산하였다. 당시 거래 계약은 기름과 밀인데 이것은 대표적인 생필품이었다. 토지를 근거로 한 임차 계약을 포함한 상업적 거래이었을 것이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 상당한 빚을 탕감해주었다. 청지기가 행한 일은 문서 위조(僞造)요 사기극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교활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일단 빚이 면제되자 청지기의 이러한 업무처리는 그 주인이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게 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의 두 가지 악한 행위(낭비와 문서조작)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였다. 예수는 이를 세상의 관점보다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다.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구절이다.

(4) 세상의 아들이 빛의 아들보다 더 지혜롭다.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교(秘敎)지혜로 표현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more shrewd)”(눅 13:8b).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하는 내용과 비교(秘敎)지혜는 문맥상 곧 바로 연결되지 않는 점이 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의 지혜는 이기적인 지혜라는 점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은 불의한 재물을 자신의 이득과 욕망 충족을 위하여 사용한다. 빛의 아들들은 세상의 불의를 미워하고 이 세상 사람들과 분리된다, 이러한 이분법이 초기 기독교에 확립되었다. 쿰란 문서에는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에 관한 이원론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IQM). 예수께서 빛의 아들들과 이 세대의 아들들이라는 이원론적 표현을 사용하신 이유는 제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비교하기 위함이다. 비유에서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의한 청지기를 가리킨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에 직면하면 민첩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데, 선민이라는 자들이 임박한 종말에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민들은 시대에 민감하지 않고 대처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신앙과 성실성의 문제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자기 생존과 유익을 위해 술수를 쓰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자기 소유를 팔고 구제함으로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지혜를 말한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자기 이윤과 욕망 충족을 위해 온갖 지혜를 창안해 낸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젠더시대에 성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은 세상의 아들들로서 자기들의 유익과 권리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온갖 이기적 지혜를 발휘한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하여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하고 이들은 사회적 특권을 누리기 위하여 동성애 비판자들을 처벌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이들은 이웃과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재산이나 권리에 있어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빛의 아들들은 자기 유익이 아니라 이웃과 타자의 유익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희생하고 헌신하고자 한다. 오늘날 구미(歐美)사회에서 세상의 아들들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 빛의 아들들에게 큰 법적 손실을 끼치고 이들이 가진 양심, 표현, 출판, 신앙의 자유에 법적 족쇄를 채우고 있다.

(5)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 그것이 영원한 보상을 준다: 지상의 선한 일은 영원한 천국으로 이어진다.

부정직한 청지기의 행위가 칭찬받는 이유는 어려운 자들과 재물의 나눔이다. 예수는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 16:9). 재물이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을 참된 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우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불의한”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불의한 재물'이란 부정한 재물을 뜻한다기 보다는 하늘의 보화와 대조되는 세상적인 재물, 즉 불의한 세대에 속한 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불의한 재물(unrighteous mammon)이란 “세속적인 소유,” 즉 이 불의한 시대의 특징을 지닌 재산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그것은 돈만을 뜻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재화들, 그리고 실로 우리가 여기서 갖고 있지만 내세로 가지고 갈 수 없는 모든 것을 뜻한다. 재산, 능력, 학식, 시간, 명예, 권력 등은 이 생(生)에 속해 있지만 우리가 내세에 가지고 갈 수 없다.

'친구를 사귀라'란 세속적인 재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내세에 들어갈 때 일어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여기서 가지고 있는 재산, 능력, 학식, 시간, 명예, 권력을 사용하는 결과에 따라 결산(심판)을 하게 된다. “재물이 없어질 때에”(눅 16:9)란 우리가 죽을 때를 말한다.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재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행위구원으로 복음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가난한 자들과 물질을 나누어야 한다. 성도들은 저들의 친구가 되도록 우리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것은 도움을 받는 가난한 자들이 친구가 된 우리를 천국에서 영접할 것이라는 의미다.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자는 세상이 끝날 때 영원한 처소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는 말씀도 이웃에 대하여 위탁된 선물과 과제를 성실하게 관리하는 자가 천국에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뚯한다. 그리고 사회적 선행은 썩지 않고 “너희의 것”(τὸ ὑμέτερον)이라는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소유가 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우리를 영접함은 천국에서 성도들이 받는 보상이 될 것이다. 신자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돕기 위하여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거나 전도와 선교와 공익의 목적을 위하여 재물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천국에서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지상의 투자는 천국을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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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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