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스콰이어스 목사
조시 스콰이어스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슈아 스콰이어스 목사의 기고글인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What if I hate myself?)를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콰이어스 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 위치한 제일장로교회(First Presbyterian Church)에서 상담 사역을 담당하는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자기혐오는 사람을 짓누르는 경험이다. 한 친구는 아버지에게 면도를 배우던 날,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매일 면도하면서 가장 힘든 건 거울 속의 남자를 마주 보는 거란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에게 그 매일의 거울 앞 만남은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자기혐오는 실제로 존재한다. 에베소서 5장 29절에서 바울은 “자기 육체를 미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속담적 표현이다. 잠언이 그렇듯, 바울은 일반적인 진리를 말하기 위해 보편적 언어를 사용한다. 대체로 사람은 자기 보존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 속에서 자기혐오는 결코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비극적으로 실제적인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첫째, 위를 바라보라

자기 안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삼위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결정적으로 행동하셨다. 성자는 육신을 입고, 육체적으로·정서적으로·영적으로 산산이 부서지셨다. 그것은 당신을 구속하기 위함이었다(이사야 53:10). 성부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를 보내어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게 하셨다. 그 목적은 바로 당신을 얻기 위함이었다(요한복음 3:16). 성령은 당신 안에 거하시기로 선택하셨고, 당신의 최악의 실패 속에서도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히브리서 13:5).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자신 안의 세 위격 모두가, 당신과의 교제를 위해 엄청난 대가를 기꺼이 감당하셨다. 이 사실은 반드시 무게를 가져야 한다.

이 단계를 건너뛰었다면, 멈추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 토대 없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둘째, 정직하게 귀 기울이라

그리스도를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왜 나 자신을 미워하는가?”

그 이유는 누군가가 나에게 행한 일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저지른 일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혐오는 종종 죄와 관련되어 나타나지만, 항상 내 죄 때문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지은 죄의 결과이고, 때로는 내가 당한 죄의 상처다.

만약 당신의 자기혐오가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저지른 죄, 특히 반복적이거나 인격 형성기에 남긴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길에는 용서와 회복이 포함된다. 용서는 느리고 값비싼 과정이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부름받았다(마가복음 11:25).

“너는 쓸모없다”는 말이 직접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반복되어 들렸다면, 그 말은 영혼 깊숙이 박힌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계속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힘을 넘겨주는 일이다. 용서는 상처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를 스스로 짊어지는 대신,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이다.

회복이 반드시 가해자와의 화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개가 없다면 화해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회복은 영혼 내부의 화해다. 당신 안의 한 부분이 거짓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며, 다른 부분을 향해 등을 돌린 것이다(시편 42, 43편 참조). 복음은 그 갈라진 부분들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키고, 그리스도께서 평가하시는 당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한다.

반대로, 자기혐오가 내가 저지른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부르심은 분명하다. 회개다(요한일서 1:9). 이것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성령께서 양심을 찌르신다면, 그 불편함은 은혜다. 사탄은 죄를 짓기 전에는 회개가 필요 없다고 속이고, 죄를 지은 뒤에는 회개가 불가능하다고 속인다. 둘 다 거짓이다. 참된 회개는 교만을 낮추고, 양심을 씻으며, 기쁨을 회복시킨다. 먼저 주님께 고백하라. 그리고 필요하다면, 당신이 상처 입힌 사람에게도 고백하라. 회개는 순간에는 아프지만, 결국에는 달콤하다.

회개 다음에는 거함이 있다. 예수께서는 순종이 그분 안에 거함에서 흘러나온다고 가르치신다(요한복음 15:1–11). 우리는 의지력으로 죄나 자기혐오를 이기지 않는다. 우리는 복음을 날마다, 때로는 시간마다 스스로에게 선포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바라볼 때 힘이 새로워지고, 순종은 절망의 짐이 아니라 기쁨으로 가는 길이 된다.

마지막으로, 감정이 무엇인지 기억하라

자기혐오는 감정이다. 감정은 진실을 가리킬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진실은 아니다. 감정은 인도할 수도 있고, 쉽게 속일 수도 있다. 자기혐오의 감정은 실제 죄, 잘못 형성된 양심, 혹은 우리의 연약함·한계·불완전함에 대한 극심한 수치심에서 비롯될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때로는 타인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어느 쪽이든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수단에 기대야 한다. 말씀, 기도, 예배, 섬김이다. 우리는 묵상하고, 부르짖고, 노래하며, 때로는 애통한다. 그렇게 걸어갈 때, 마음은 이미 믿음이 도달한 자리를 천천히 따라온다.

사랑하는 신자여, 만약 당신이 자기혐오와 싸우고 있다면, 구주께서 바라보시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기 시작하기를 바란다. 당신은 정교하게 지음 받았고, 깊이 사랑받고 있으며,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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