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7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
단체사진 촬영이 이뤄지던 모습. ©제507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

제507주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기념대회가 9일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안양제일소망교회에서 개최됐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신학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행사에서는 루터와 츠빙글리, 칼뱅의 신학을 오늘의 교회 현실과 연결해 조명했다.

행사 대회장 주도홍 박사(백석대 신대원 명예교수)는 개회사를 통해 “종교개혁은 거대한 제도 개편이나 선언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어떻게 읽고 선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인물 중심의 서술을 넘어, 각 지역과 인물마다 달랐던 개혁의 다양한 결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박사에 따르면,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했던 츠빙글리는 1519년 신약성경을 연속으로 강해하기 시작하면서 개혁의 물꼬를 텄다. 논쟁적 문서가 아니라 강단에서의 지속적인 성경 해설이 그의 개혁 방식이었다. 당시 로마교황청은 그를 루터의 추종자로 간주했지만, 그는 자신을 특정 인물의 사상에 속한 이가 아니라 성경에 붙든 설교자라고 규정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영성을 설명했다. 그는 “교회 쇠퇴와 신학교 위축이라는 현실 앞에서, 신학은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터는 수도사로서의 기도와 묵상, 그리고 삶의 고난 속에서 신학적 통찰을 얻었다. 김 박사는 루터 신학의 형성 과정을 기도(oratio), 묵상(meditatio), 시련(tentatio)이라는 세 요소로 정리했다. 이는 중세 스콜라 신학이 강조하던 논리적 체계와는 다른 길이었다.

특히 루터는 인간의 공로나 교회 권위보다 성경을 최종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영광의 신학’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과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은총을 신학의 중심에 두었다. 김 박사는 이를 “자기 비움의 영성”으로 설명하며, 오늘날 신학 역시 이성 중심의 사고를 내려놓고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루터의 사상이 단지 교회 내부 개혁에 머물지 않고, 근대 시민윤리와 직업소명 이해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며 “신앙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 그의 통찰은 서구 근대정신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장 칼뱅의 신학 이해가 다뤄졌다. 발표에 나선 안명준 박사(평택대 명예교수)는 칼뱅이 ‘신학’이라는 학문적 용어보다 ‘교리’라는 표현을 더 즐겨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칼뱅에게 신학은 독립된 학문 체계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기 위한 봉사였다. 그의 대표 저작인 ‘기독교강요’ 역시 학문적 논문이라기보다, 설교자와 성도를 위한 신앙 안내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안 박사는 “칼뱅은 신학을 삼위 하나님과 분리된 자율적 학문으로 보지 않았다”며,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교회의 삶을 형성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학을 △성경 진리를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명 △교리를 통해 신앙을 보존하는 규범적 역할 △공동체를 세우는 지적·영적 봉사라는 세 차원에서 설명했다.

칼뱅에게 경건은 신학의 출발점이자 목표였다. 따라서 신학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봉사자여야 하며, 말씀에 충실한 신학만이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에는 이신열 교수(고신대)가 ‘칼빈의 자연신학 비판: 『기독교 강요』 1권을 중심으로’, 이은선 박사(안양대 명예교수)가 ‘루터에게 있어서 신학과 경건의 의미’, 임종구 교수(대신대)가 ‘칼뱅의 목회신학: 종교박해를 당한 성도들에게 주는 칼뱅의 목회서신을 중심으로’, 정미현 교수(연세대)가 ‘츠빙글리의 동역자: 카타리나 폰 짐머른’ 등을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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