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침례교 설교자이자 변증가인 보디 보컴(Voddie Baucham) 목사가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The modern church is producing passionate people with empty heads who love the Jesus they don’t know very well.” 우리말로는 “현대 교회는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열정은 있지만 머리는 비어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번역하면,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을 깊이 알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사랑한다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신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라는 말이다.
이 문장은 “열정보다 진리에 기초한 신앙”, “감정보다 성경적 지식”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과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 5:39-4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성경을 누구보다 많이 읽었고 연구했다.
그러나 정작 성경이 가리키는 분이신 예수님을 거부했다. 지금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그렇다. 성경을 아는 것과 예수님을 아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성경의 목적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이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한다”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제사, 성막, 유월절 어린양, 아브라함의 희생 제사, 다윗의 왕권” 등은 모두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였다.
보디 보컴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성경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채 성경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습득하는 것보다 더 허탈한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 공부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신학 지식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성경을 주신 진정한 의미이자 목적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이다. 본인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나 같이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에게 주는 소중한 교훈과 깨우침이다.
성경은 많이 읽는데 예수님은 믿지 않을 수 있다. 불교의 법륜 스님 같은 분이다. 그분의 강연을 들어보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성품 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분들께 순종하지 않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요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순종 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났느냐는 것이다. 성경 지식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드러낸다. 그럴 때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의 참 진가와 구별성이 세상에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은 단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시며 삶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지식을 쌓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닮아가며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의 참된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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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