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
강준민 목사
이번 주간에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짧은 시를 만났습니다. 시의 제목은 조금 충격적입니다. 《자살》입니다. “모든 문 가운데 마지막 문. 그러나 아직 모든 문을 다 두드려 보지는 않았다.” 불과 몇 줄밖에 되지 않는 시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에는 절망을 넘어 생명을 붙들게 하는 깊은 울림과 따뜻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는 마지막 문 앞에 서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지금 보이는 문이 마지막 문처럼 느껴질지라도, 아직 두드려 보지 않은 문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 받아 보지 못한 도움이 있습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내일이 있습니다.

절망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듭니다. 눈앞의 한 문이 닫히면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한 문이 닫혔다고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 새로운 길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시는 삶의 마지막 결론을 너무 서둘러 내리지 말라고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문을 두드리고, 조금 더 살아 내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아직 모든 문을 두드려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홍해 가운데 길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 속에 감추어진 길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길을 보지 못한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문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길을 만드시면 바다도 길이 됩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막힌 곳도 출구가 됩니다.

인생은 수많은 문을 통과하는 여행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생명의 문을 엽니다. 배움의 문을 엽니다. 사랑의 문을 엽니다. 일터의 문을 엽니다. 사명의 문을 엽니다. 때로는 실패의 문도 엽니다. 고난의 문도 엽니다. 눈물의 문도 엽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 문을 지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습니다. 실패의 문을 지나며 겸손을 배웠습니다. 눈물의 문을 지나며 기도를 배웠습니다. 상실의 문을 지나며 하나님의 위로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통과한 모든 문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사람으로 빚어 오셨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정말 마지막 문 앞에 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병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입니다.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었을 때입니다.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 무너졌을 때입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새로운 문이 열리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에 어두운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제 끝이다. 아무 문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직 끝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래가 남아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다음 문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조금 더 견디십시오. 견딘다는 것은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족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는 전문적인 도움의 손길을 붙드는 것입니다.

절망은 우리를 고립시키지만,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손을 내밀게 합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 있다면 혼자 머물지 마십시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십시오.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생명을 지키는 용기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문이십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모든 문이 닫힌 것 같아도 우리를 기다리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은혜의 문이십니다. 회복의 문이십니다. 생명의 문이십니다.

성경은 닫힌 문이 새로운 문으로 바뀐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셉에게 감옥은 끝이 아니라 총리의 자리로 나아가는 문이었습니다. 모세에게 광야는 끝이 아니라 부르심의 문이었습니다. 다윗에게 아둘람 굴은 끝이 아니라 왕의 길로 들어서는 문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부활의 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지막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눈앞의 닫힌 문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닫힌 문이 내일도 닫혀 있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 너무 빨리 인생의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은혜가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이 쓰실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문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 안에는 언제나 새로운 은혜가 있습니다.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아직 열어 보지 않은 문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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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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