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북한군 포로의 인도적 보호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던 이들을 ‘여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 수사 의뢰했다. 여행경보 4단계, 여행 금지 국가를 허가 없이 다녀왔다는 이유인데 시민단체들은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사법적 참작”을 호소했다.

장세율 겨레얼통일연대 대표와 강동완 통일한국 이사장 등으로 구성된 민간 방문단은 지난 5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에스더기도운동의 후원으로 마련된 영치금과 탈북민들이 쓴 위문편지, 지원물품 등을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하고 돌아왔다. 이들을 외교부가 ‘여권법’ 위반으로 고발한 건 당시 방문단이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받지 않고 우크라이나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로 떠난 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당국의 ‘여행 금지’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다만 방문단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른 사정이 있었다.

방문단이 외교부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신청한 게 지난 3월 30일이다. 그런데 외교부는 신청서를 접수한 지 한 달이 다 돼서야 소관 중앙행정기관장의 추천서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통일부 장관의 추천서를 첨부하라는 보완 요구를 해 방문단이 통일부에 긴급 협조 민원을 보냈으나 “추천서 발급이 어렵다”는 최종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방문단은 우크라이나 시민자유센터 등 현지 시민사회와 오랜기간 협의해 공식 초청장을 받고, 방문일정, 현지 안전·경호대책 등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항공권과 국제 이동계획까지 치밀하게 마련한 뒤 외교부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를 신청했던 건데 통일부가 끝내 추천서를 발급해 거부했던 거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방문단이 우크라이나 방문을 목적으로 ‘예외적 여권사용’ 승인을 위해 밟은 정상적인 절차와 과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사건의 공익적 목적과 신청한 경위를 밝히고 정부가 요구한 승인절차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통일부가 이들의 추천서를 거부한 이유는 ‘여행 금지’ 국가라는 데 있다. 현지 인권단체로부터 정식 초청을 받아 예외적 여권사용 승인을 요청했던 건데 직접 전쟁 발발 지역에 들어가는 게 아닌 인도적 활동을 위한 방문을 통일부가 끝까지 거부한 건 쉬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다.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안이 “전쟁·분쟁지역에서 수행되는 인도적·인권활동의 경우 민간단체가 공식 초청과 안전대책을 갖추고 정부가 요구하는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는데도 소관 행정기관이 해당 지역의 위험성 자체를 이유로 추천서를 발급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했다. 이어 이런 일이 일상화되면 “민간 차원에서 예외적 여권사용 승인을 위해 추가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제도적 한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방문단의 출국은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라 북한군 포로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인도적이고 공익적 목적이 수반됐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시민사회의 신뢰와 연대를 바탕으로 이뤄진 첫 번째 인도주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국제사회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갖고 주목했던 사안이다.

방문단이 우크라이나에 간 건 북한군 포로에 대한 인도적 보호활동이라는 목적 하나다. 국내외 166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뜻을 모아 추진한 사안인데 외교부가 고발과 함께 수사를 요청하면서 인도적인 활동이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분위기다. 북한 포로를 인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뜻을 모았던 시민사회는 이걸 정부의 무언의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사안에 시민사회가 대신 나서 인도주의 활동을 수행하면 대게는 정부가 뒤에서 암암리에 힘을 보태주는 게 관례다. 그런데 통일부는 끝까지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다. 만약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방문이 무산됐더라면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눈치 보느라 인도주의 정신을 외면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다.

얼마 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봉쇄에 반대하는 구호선단을 타고 가자지구로 향하던 한국인 활동가 2명 이스라엘군에 체포됐다가 석방된 일이 있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를 ‘전범’으로 지칭하는 등 거센 비난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됐다.

그런데 이 활동가는 정부의 ‘여행 금지’ 규정을 어겨 이미 외교부로부터 여권이 만료된 상태였다. 정부의 지시를 어기고 전쟁 중인 지역에 갔다가 체포되는 바람에 자칫 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커다란 외교적인 충돌이 일어날 뻔했던 사건이다.

이 두 활동가는 여권이 만료된 관계로 외교부가 여권 대신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줘서 무사히 귀국했다. 그런데 이들이 국내에 들어온 후 외교부가 이 두 사람을 ‘여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는 소식이 어디에도 없다. 귀국 후 얼마 안 돼 한국교회 인권센터가 활동가 중 한 사람인 김아현 씨에게 ‘2025 인권상’을 수여했다는 보도뿐이다.

두 사안 모두 ‘여권법’을 어긴 사안이니 응당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한쪽은 추천서 없이 출국했다고 외교부가 고발하고, 한쪽은 외교부가 보증을 서줘 국내로 들어오게 한 후 인권상을 받게 하는 등 마치 영웅 대접하는 건 누가 봐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인권과 정의를 위한 실천은 어디까지나 인도주의 정신을 가지고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까지 정부가 다르게 적용한다면 진영 논리에 따른 ‘이중 잣대’ 논란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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