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휴거의 목적은 무엇인가?"What’s the purpose of the rapture?)를 6월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히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 바울이 우리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거울을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본다"(고전 13:9, 12)고 한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으며, 아마도 우리가 "온전히 알게 될"(12절 하반절) 영원한 나라에 이르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부족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온갖 토론과 논쟁으로 이어지며, 안타깝게도 때로는 과열되기도 한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같은 최상위 수준의 가르침에는 대개 동의가 이루어지지만, 한 단계 아래의 작동 원리, 즉 그리스도의 죽음이 대속적 속죄인지, 사탄에게 지불된 몸값인지, 단순한 도덕적 모범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곤 한다.
C. 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 둘을 구분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이론들은 기독교 자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기독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이 '기독교 본질'과 '작동 원리'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휴거(Rapture)'에 대한 가르침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휴거에 대한 논의는 종종 화약고처럼 폭발적인 논쟁으로 번지곤 한다. 바울이 이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했기 때문에, 장차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자체는 그리 큰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4~18).
바울이 휴거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 "끌어 올려(caught up)"는 헬라어로는 '하르파조(harpazo)', 라틴어로는 '라피오(rapio)'인데, 이는 "붙잡다" 또는 "낚아채 가다"라는 뜻이다.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주님의 이끌림을 받을 때도 동일한 헬라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snatched Philip away)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 8:39).
그러므로 장차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박하기는 어렵다(비록 일부 반박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활발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휴거의 시기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대개 다음의 다섯 가지 주요 입장 중 하나를 취한다.
먼저, 마지막 때의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해 들림을 받는다는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 view)'이 있다. 다음으로는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 근거하여, 환난이 시작될 때 오직 충성된 성도들만 그리스도와 함께 들림을 받고 불충성한 자들은 환난을 견디도록 남겨진다는 '부분 휴거설(partial-rapture position)'이 있다.
적그리스도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세워 대환난의 사건들이 시작되는 환난의 중간(3.5년 후)에 성도들이 들림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환난 중간 휴거설(mid-trib view)'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 어딘가에서 성도들이 들림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진노 전 휴거설(pre-wrath view)'이라는 소수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환난이 끝난 후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들림을 받는다는 '환난 후 휴거설(post-trib view)'이 있다.
필자는 이 이론들 중 어느 것이 맞는지(만약 맞는 것이 있다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휴거의 목적은 무엇인가? 애초에 하나님은 왜 그분의 종말 계획 속에 휴거라는 사건을 짜 넣으셨을까?"
이 다섯 가지 휴거 이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살펴보면, "왜 휴거인가?"에 대한 두 가지 핵심 주제가 두드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선 네 가지 이론은 성도들이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일종의 '신적 구출(divine rescue)' 옵션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가올 진노를 겪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시는 방법인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고 기록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의 도피는 종말론적 차원과 영원한 차원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 이론인 환난 후 휴거설은 주님께서 신부와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공중에서 주님과 합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메시아적 '환영 파티(Welcome Party)' 가르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영접하다(meet)"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역사적으로 시민들이 성 밖으로 나가 방문하는 왕이나 고위 관리를 환영한 뒤, 남은 길을 그와 동행하여 성 안으로 들어오던 관습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필자의 생각은 어떨까? 필자는 여전히 '신적 구출' 옵션을 선호한다. 성경 전반에 묘사된 묵시적 사건들이 죄로 인해 이 땅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라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이들은 그러한 신성한 형벌을 면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이 종말론적 관점을 염두에 두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매우 비슷하다고 본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3:10).
또한 필자는 성경 속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기 전에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시거나 미리 빼내시는 하나님의 패턴을 보여주는 예표론적(typological) 그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 롯, 라합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그 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러한 입장이 바울이 휴거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며 결론지었던 종류의 평안과 확신을 제공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살전 4:18). 필자가 그저 겁쟁이일지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고 말씀하신 대환난의 때를 겪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입장이 틀릴 수도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고하게 믿는다. 그것이 정확히 언제 일어날지는 늘 그래왔듯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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