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다문화센터 대표 이선규 목사
대림다문화센터 대표 이선규 목사.

창세기는 ‘천지 창조’에서 시작해 아담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계보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창세기 36장은 메시아의 조상으로 택함받은 야곱의 역사에 앞서, 에서와 그의 후손에 관한 기록을 다룬다.

언약의 후손인 야곱과 그의 자녀들이 아직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을 때, 에서와 그의 후손은 왕족을 이루고 많은 재물과 권세를 소유한 ‘세상 사람들’(시 17:14)로 성장했다.

본문 1절부터 8절까지는 에서의 가족이 가나안에서 세일산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9절 이하는 세일산에 정착한 에서의 후손들이 정치적 세력으로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서의 아들들은 가나안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에서의 가문은 언약의 땅을 떠나 세일산에 정착했다.

그러나 언약의 땅 밖에서 아무리 지위가 높아지고 명예와 재물이 많아진다 해도, 그것이 참된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1.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1~8절)

에서에게는 가나안 땅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야곱과 함께 거주하지 못하고 세일산으로 떠나게 됐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던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는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손녀이자 아나의 딸인 오홀리바마를 아내로 삼았다.

에서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일은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에게 큰 근심이 됐다(창 26:34~35).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보다 육신적인 욕망과 현실적인 조건을 앞세웠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육신적인 삶을 통해 얻는 인간의 만족은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세속적인 정욕과 쾌락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공허함과 불만족만 남게 된다.

에서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상을 섬기는 민족의 여인들과 결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후손과 야곱의 후손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 에서를 세일산으로 옮기셨다.

두 형제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에서는 가축을 기르기에 더 나은 환경을 찾아 거처를 옮겼을 것이다(7절). 겉으로 보면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 세일산을 기업으로 주셨고, 야곱에게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신 2:5, 수 24:4).

2. 에돔 후손들의 번성과 그 특성(9~43절)

1) 많은 민족과 세력을 이루었다

에서의 아들들은 야곱의 아들들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야곱의 후손들보다 먼저 번성했다. 에서의 후손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며 여러 민족과 섞였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점차 사라졌다. 반면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면에서는 크게 번영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권세와 세력을 얻었으며, 국가의 기반도 튼튼히 세워갔다. 야곱의 후손들보다 먼저 족장과 왕을 세우며 정치적 체제를 갖췄다.

그렇다면 야곱의 후손들은 어떠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1)고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고 광야를 방랑해야 했다.

왜 이와 같은 역사가 나타나는가. 조급한 사람은 눈앞의 현실만 보고 속단하거나 낙심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때문이다.

신자의 번영은 세상 사람들의 성공보다 늦게 찾아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 성도가 받을 보상은 지존하신 하나님 앞에 보관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가진 세상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다. 그 사람과 그의 가문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일찍 자란 것은 일찍 시들기도 한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지만,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기다림은 단순한 지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준비시키시는 과정이다.

“때가 차매” 주께서 이 땅에 오셨듯이(갈 4:4), 정하신 때가 이르면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오래 참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참된 용기란 무엇인가? 여호수아는 칼을 들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며 믿음의 용기를 보여줬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지적한 나단 선지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함으로써 진정한 용기를 나타냈다. 요나 역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욘 1:12)고 외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였다.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난 것은 용기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용기 있는 사람을 사용하셨다. 처음부터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훈련해 담대한 사람으로 세우신 뒤 사용하셨다.

우리는 비겁함과 무정함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폭력과 부정, 거짓과 불의, 부조리와 유언비어, 날조와 협박, 부도덕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나중에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비리를 폭로하면 영웅처럼 대접받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 없이 책임을 부인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다.

돈이 된다면 부도덕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고,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일을 능력처럼 여기는 시대다. 심지어 법을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악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려운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면 언제든지 사람의 위치와 지위를 바꾸실 수 있다. 세상에서 얻은 권세와 영광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에서는 야곱보다 먼저 번성했고, 그의 후손들도 일찍 나라와 왕을 세웠다. 그러나 먼저 번성했다고 해서 영원히 번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과 참된 복을 누릴 수 있다.

기억하자. 의인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하지만, 악인의 형통은 오래가지 못한다. 눈앞의 성공과 번영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과 때를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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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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