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바트 에르만의 마지막 강의’'(Bart Ehrman’s last lecture)를 9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UNC Chapel Hill)의 저명한 성서학 교수 바트 에르만(Bart Ehrman)은 2025년 12월 7일, 40년이 넘는 강단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보수 신학자 브루스 메츠거(Bruce Metzger)의 지도를 받으며 교육을 받았지만, 이후 기독교 신앙을 떠났고, 기독교의 진리 주장, 특히 성경 본문의 신뢰성을 비판하는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해 왔다.

에르만은 마지막 강의에서도 다시 한 번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고, 신뢰할 수도 없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다. 그에 따르면, 현존하는 성경 사본들에는 너무 많은 ‘변이(variants)’, 즉 서로 다른 차이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경 원본이 무엇을 말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은퇴 강의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의 성경 저자가 책을 쓴 뒤, 시간이 지나 누군가가 그 책의 사본을 만들었겠죠. 또 누군가가 그 사본을 베끼고, 또 그 사본의 사본을 베끼고, 그렇게 수세기 동안 반복됐습니다. 우리는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고, 후대의 사본들만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필사자들이 실수를 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5,800개가 넘는 사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변이는 얼마나 될까요? 최근 추정치는 약 50만 개입니다. 물론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지만, 어떤 것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것은 한 절의 의미를, 한 장의 의미를, 심지어 한 권 전체의 신학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만의 말처럼, 이런 사본 차이들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원래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자.

‘변이’란 무엇인가?

에르만은 자신의 저서 『Misquoting Jesus』에서 “신약성경에는 단어 수보다 더 많은 변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말 자체는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유명한 대사를 빌리자면, “그 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다.”

에르만의 주장은 부분적인 진실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성경 본문의 신뢰성 자체가 무너졌다고 오해하게 된다. 변이의 숫자가 많은 이유는 단순하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절에서 한 단어의 철자 하나가 다른 경우가 2,000개의 사본에서 발견되면, 그것은 2,000개의 변이로 계산된다. 현재 비교 가능한 사본이 거의 6,000개에 이르기 때문에 숫자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에르만 자신도 인정하듯이,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변이의 절대다수는 철자 차이, 숫자 표기, 문장 어순의 변화 같은 것들이다. 그 결과 신약성경 본문은 약 99%가 순수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며, 의미 있는 변이를 포함하는 부분은 약 1%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결론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1%다. 에르만의 주장처럼, 그 일부가 정말 성경의 의미나 신학 전체를 바꿀 정도일까? 아니다.

‘의미 있는 변이’의 실제 예

대표적인 예로 데살로니가전서 2장 7절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온유한 자”라고 묘사하기도 하고, 일부 사본에서는 “어린아이들”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헬라어 단어 하나(epioi vs. nepioi)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말하는 ‘의미 있는 변이’다. 그렇다면 이 때문에 누군가 신앙을 버리게 되었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부정되었는가? 구원이 은혜가 아니라 행위로 바뀌었는가? 전혀 아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한 책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다른 책은 “부활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곳은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고, 다른 곳은 “행위로 천국에 간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어만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에르만은 한 루터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본 변이 때문에 우리가 신약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를 철학자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는 이렇게 요약한다: “진행자가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원문은 실제로 무엇을 말했습니까?’라고 묻자, 에르만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성경이 말하는 내용과 거의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진행자가 다시 ‘그런데 그렇게 많은 필사 오류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에르만은 ‘물론이죠. 하지만 우리는 본문을 재구성할 수 있었고, 그래서 원문이 무엇을 말했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고백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당신은 성경의 주장을 믿지 않겠다고 말할 자유가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자체를 알 수 없다고 의심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본문 비평이라는 학문을 통해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기록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며, 후대의 추가나 수정 시도는 이미 잘 식별되어 있고, 그 어떤 것도 성경의 핵심 신학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은, 『Did Jesus Exist?』에서 예수의 역사성을 변호하는 등 기독교에 유익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에르만이, 오히려 창세기에서 뱀이 던졌던 그 오래된 질문,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느냐?”(창 3:1)를 반복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를 위해 계속 기도하자. 그리고 언젠가 그가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기를 소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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