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종교가 여성의 사회적·경제적·법적 자유를 제한하는 전통적 성 역할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남성보다 종교적 신념과 실천에서 더 높은 참여도를 보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에 따르면, 이 같은 역설은 영국 워릭대 사샤 베커 교수와 코펜하겐대 자넷 신딩 벤첸, 루뱅가톨릭대 춘 치 콕 연구진이 공동 집필한 연구 보고서 ‘젠더와 종교: 종합 분석’(Gender and Religion: A Survey)에서 다뤄졌다.
해당 논문은 최근 인구경제학저널(Journal of Demographic Economics)에 게재됐다. 연구 발표 시점은 영국 성공회가 사상 처음으로 여성 캔터베리 대주교를 임명한 시기와 맞물려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
연구진은 경제학·사회학·심리학 분야의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를 종합 분석해 두 가지 질문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하나는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종교적인지, 다른 하나는 종교가 여성의 사회·경제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것이다.
전 세계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특정 종교 전통에 소속감을 느끼고, 정기적으로 기도하며, 신앙이 일상생활에서 중심적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와 문화, 주요 종교권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됐다.
다만 종교 전통에 따라 참여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연구진은 “기독교권 국가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예배 참석률이 높은 반면, 이슬람권과 유대교권에서는 남성이 더 높은 참여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여성의 기도 참여도가 높은 배경으로는 여성의 감정 표현 성향과 돌봄 역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경제적 역할 분담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됐다. 1970년대 연구들은 종교 활동이 가정 중심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고,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여성들이 종교 활동에 더 많이 참여했다고 봤다. 최근 시간 사용 데이터에서도 직장에 다니는 여성의 종교 활동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이 확인됐으나, 성별 격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 회피 성향도 하나의 설명으로 제시됐다. 17세기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신앙을 ‘위험 대비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으로 본 것처럼, 현대 연구에서도 여성이 평균적으로 더 위험 회피적 성향을 보이며, 이것이 종교적 믿음에 더 호의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종교 공동체가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경제적·개인적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적 지지와 돌봄을 제공하기 때문에 종교 참여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결핍 보상(compensation for deprivation)’ 가설이 제시됐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고용, 공적 영향력이 제한된 사회일수록 종교 공동체가 의미와 인정, 리더십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진은 20세기 초 한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기독교 여성 지도력 확대가 여성 교육과 사회 참여 증가와 연결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신과 출산, 돌봄 등 생애주기 요인과 여성의 평균 수명이 더 길어 고령층 종교 인구에 여성 비중이 높은 점도 종교성 격차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연구는 현대화, 세속화, 성평등 수준이 높아질수록 성별 종교성 격차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고도로 세속화된 국가에서도 여성의 종교성이 여전히 더 높다”고 밝혔다.
결혼과 출산도 변수로 작용했다. 연구진은 “기혼 여성이 미혼 여성보다 종교성이 높은 경향이 있는데, 이는 좋은 어머니상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자녀의 종교적 양육과 연결되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남성은 스포츠나 동호회 등 비종교적 공동체 활동으로 종교 활동을 대체하는 비율이 더 높아, 이른바 ‘세속적 경쟁’이 종교 참여 격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문 후반부에서는 종교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했다. 연구진은 자연실험, 정책 변화, 무작위 개입 연구 등 엄격한 실증 방법을 활용한 연구들을 중심으로 종교의 효과를 검토했다.
그 결과 종교는 여성과 여아의 교육 접근성, 결혼 시기, 노동시장 참여, 출산율, 재생산 권리, 일부 사회의 남아 선호에 따른 출생 성비 문제 등에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는 교리 또는 입법자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 법과 공공정책 형성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종교의 영향이 일률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종교가 성 불평등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여성 역량 강화를 촉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초기 개신교 운동이 모든 신자가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문해력 향상을 추진한 사례가 긍정적 예로 제시됐다. 반대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종교를 근거로 여성과 여아의 교육을 전면 배제한 사례로 언급됐다.
세대별 변화도 관찰됐다. 종교성의 성별 격차는 고령층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으며, 호주와 유럽, 북미 지역의 젊은 세대에서는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일부 국가에서는 젊은 남성의 종교성은 높아지는 반면, 젊은 여성은 제도권 종교에서 이탈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는 강한 가부장적 남성성을 강조하거나 기독교 민족주의 성향을 띤 일부 교회의 성장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베커 교수는 “사회가 현대화되고 세속화될수록 성별 종교성 격차가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요인이 여전히 여성을 신앙으로 이끄는지에 대한 증거는 이제 막 축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의 고용 참여, 재생산 권리, 법적 권리와 의무는 여전히 종교 교리와 신앙이 입법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형성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종교가 가부장적 규범을 강화해 여성에게 비용과 부담을 지우는데도 여성이 평균적으로 더 종교적이라는 점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한 역설”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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